감상글(시)

멀미 / 이홍섭

톰소여와허크 2015. 4. 15. 14:30

멀미 / 이홍섭

 

 

어머니와 함께

아흔아홉 굽이 대관령 넘어 친척 집으로 가는 길

 

휘청거리는 버스 안에서

젊은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자꾸 말을 시키셨다

 

말 좀 해볼래

말 좀 해볼래

 

그러다보면

어느덧 버스는 대관령을 넘고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잠이 드시곤 했다

 

일흔 넘으시며

어디 한 군데 몸 성한 곳 없는

늙으신 어머니

 

삶은 굽이굽이 멀미 같은 것이어서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건네야 하는 것인데

 

말 좀 해볼래

말 좀 해볼래

조르던 어머니께서는

이제 말이 없으시다

 

- 『터미널』, 문학동네, 2011.

 

 

  * 몸이 둔해졌는지 이전과 달리 차멀미는 거의 하지 않는 편이지만 사람멀미는 아직 진행 중이다. 여럿이 한데 어울리는 데 불편한 느낌이 있다. 멀미를 할 환경을 아예 만들지 않거나 피하면 그만이지만 그것보다는 직접 부딪치면서 증상을 조금씩 완화시켜 나가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주위와 어울리지 않고 살기도 어렵거니와 무리 중에 혼자 몸을 빼기 어려운 상황도 언제든 생길 것이기에 멀미를 잘 다독이는 기술이 필요하다.

  시인도 시인의 어머니도 멀미를 참, 잘 다독인다 싶다. 굽이굽이 도는 버스 따라 어머니 속이 울렁이게 되자, 그때 어머니의 선택은 어린 아들에게 말 시키기다. 세상에 가장 믿는 구석에 기대어 당신의 불안과 근심을 더는 것이다. 아마 아들도 험한 세상살이에 멀미할 때면 어머니에게 잠시 기대었다 힘을 내곤 했을 것이다. 이제 그런 어머니가 없단다. 예전의 멀미마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사람멀미에 피곤해하는 나 같은 사람도, 정작 그때의 멀미가 그리울 때가 올 지 진짜 알 수 없는 일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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