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사소한 의심 / 강동수

톰소여와허크 2015. 5. 17. 22:53

 

사소한 의심 / 강동수

 

 

가끔 이런 의심이 드는 거야

세상이 창조된 것이야 창세기에 있고

단군신화도 제왕운기에 있으니 믿으면 되지

그런데 정말 이것은 사소한 것인데

정말 사소한 것인데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는 거야

철학관에 앉아서 다른 이의 운명을 들여다보는

저 도사는 자신의 미래를 몰랐을까

대나무 깃발에 걸려 퍼덕이는

애기동자가 애기가 아니듯이

도사가 도사가 아닌 세상

 

산속에 가부좌 하고 사셨던 노스님은

폐암으로 돌아가실 줄 알았을까

폐수도 없고 분진도 없는 곳에서의 죽음이

아이러니한 이 아침에

죽음으로 아침신문을 장식하는 저 사이비 교주는

자신의 부활을 믿었을까

아,

참으로 시시한 의심이 드는 이 시간에도

시간은 나를 비켜가지 못하고

내가 써내려간 시시한 나의 문장들은 언제

어디에서 부활할까

책장에 유배된 시집 속의 시어들은

꽃피우지 못한 시인의 눈물이다

 

- 『누란으로 가는 길』, 시와산문사, 2015

 

 

  * 소경이 저 죽을 날 모른다는 속담처럼 무당도, 도사도, 귀신도 저의 운명을 정확히 모르는 듯하다. 점쟁이 사주쟁이 관상쟁이도 남의 근심을 열심히 들어주고 부적 한 장으로 믿음을 처방하기는 하지만 점점 그 영험함을 잃어가고 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에 어떤 사람은 신을 찾고 어떤 사람은 보험을 찾고,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안할 자유를 찾겠다고 한다. 그러고저러고 하는 가운데도 분명한 것은 “시간은 나를 비켜가지 못하고” 흐르니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늙어가는 거다.

  그러니 아주 늦기 전에 물리적 시간과 별도로 존재하는, 미래의 시간까지 지분을 갖고 이어질 시 한 편을 얻는 게 시인의 꿈이기도 할 것이다. 윤동주와 기형도는 생전에 자신의 시집을 엮지 못했다고 한다. 윤동주는 정지용의 서문으로, 기형도는 김현의 평에 힘입어 시간을 초월해서(아주 초월할 수는 없겠지만) 시문학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되었지만 그것만으로 시의 운명을 예단할 수 없을 것이다. 쓰는 사람의 노고와 읽는 사람의 마음이 아름답게 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집 가판대가 줄어드는 요즘, ‘사소한 의심’ 하나는 “책장에 유배된 시집”이 과연 독자의 마음을 사서 풀려나기는 할지, 그런 날이 있기는 할지에 관한 거다. 이 의심이 여지없이 깨져서 세상 모든 “시인의 눈물”이 충분히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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