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저녁 / 박방희
저녁에 해지고 난 뒤
어두워지던 날이 더 이상 어두워지지 않고
도로 환하게 밝아오던 일, 또 그런 순간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지상에 무슨 특별한 일이 있어
해님이 잠깐 걸음을 멈추었구나!
말하자면 한 생명이 세상에 오고 있거나
한 생명이 세상을 떠나고 있어
어두운 길을 좀 밝게 하려는 것이거니…….
일생 중 가장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 놀이를 위해
해님은 집에 좀 늦게 가고
더러는 도로 올라오기도 하는 것이니
그럴 때는 저녁이 낮보다 더 환해
전생이나 후생의 어느 때처럼 느껴지며
둥지를 찾는 새들도 숨을 돌리고
들의 곡식들도 과외로 조금 더 자랄 수 있다
이 세상에 가장 못나, 아름다운 신랑신부가
백년가약을 위해 막 혼례청에 오르고 있거나
아니면 누군가 오랜 이별을 위해
노을 진 강가에서 손 놓지 못하고 있을 때
해님은 낮을 좀 더 늘이는 것이다
그런 날은 하루가 24시간을 훌쩍 넘겨
스물다섯, 여섯 시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 『복사꽃과 잠자다』, 도서출판 지혜, 2016.
* 저녁 늦게까지 노느라고 바빴던 시절을 간직한 사람들에겐 하루해가 좀체 넘어가지 않고 “더러는 도로 올라오기도”하면서 “저녁이 낮보다 더 환해”지는 경험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유전되어 왔을 이 경험을 누군가 아이들로부터 빼앗고 있다.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 나오는 회색 신사를 떠올린 어른이 있다면, 자신이 곧 회색 신사가 아닌지 의심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어른은 일을 구하거나 일에 쫓겨서 바쁘고, 아이는 학교 공부에 지치고 학원 공부에 바쁘다. 놀이터는 일찍 캄캄해지고 술집은 늦게까지 밝다. 별빛은 사람을 모으지 못하고, 휴대폰 불빛 한 개 한 개가 한 사람 한 사람을 따로 모을 뿐이다. 24시간을 쪼개어 기계적으로 일하고 공부하는 데 익숙해지는 동안 덤으로 주어지는 “스물다섯, 여섯 시간”은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저녁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물리적 시간 이상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가수 김만수가 노래했던 ‘모모는 철부지’는 앞의 소설이 아니라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의 다른 이름) <자기 앞의 생>에서 착상한 것이라 한다.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는 노래 가사도 소설 속 할아버지의 대사를 빌려온 것이다.
박방희 시인도 사랑의 결실과 이별의 순간에 시간이 짐짓 늘어지는 것임을 말한다.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란 가사를 시인의 감성으로 새로 쓴다면 ‘모모는 시계바늘을 따르지 않는 생’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지만 시계바늘 따라 생각도 또 바뀔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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