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북녘 하늘을 보며 / 유준

톰소여와허크 2016. 10. 20. 11:35

북녘 하늘을 보며 / 유준

 

 

햇빛 좋은 날

감은 눈으로

해를 바라보라

흐르는 붉은 색이 얼마나 피다운가

     

햇살 좋은 날

북녘 하늘을 우러러보라

잘린 허리라

부끄러움이 클지라도

그 하늘이 우리 하늘 아니냐

    

햇볕 좋은 날

북녘 들을 그려보라

같은 하늘 금수강산이련만

한 발짝 디딜 수 없는

허허, 죽은 땅이로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고

정다움은 정다움이려니

나는 아우, 너는 형

우리는 허리 잘린 부끄러운 형제

     

애들아

빨갱이라 하지 마라

파랭이라 하지 마라

두 색이 섞이면 무장무장 아름다울 터

같은 피

진한 피

자랑스러운 형제 피 아니냐

 

- 시는 죽었다, 북인, 2016.

 

    

  * 박완서와 김광균의 고향인 개성. 김소월과 백석, 이광수와 이중섭의 고향인 평안도 정주. 김구와 안중근의 고향인 황해도 해주, 이용악과 김규동의 고향인 함경도 경성 등등은 통일이 되면 우선 들러봤으면 하는 곳이다. 예술가들의 고향을 찾아 주변 풍경이나 지리도 익히고 인물의 자취나 문향도 느끼면 오죽 좋을까 싶은 거다.

   『엄마의 말뚝연작에서 오빠의 뼛가루를 고향 쪽 바다에 뿌리고 어머니 역시 그러하기를 소망하는 것을 두고 박완서 선생은 분단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고 생전에 말한 바 있다. 김규동 선생 역시 나는 시인이다서문에서 죽기 전에 고향 집 느릅나무를 보기를 소원했지만 어머니도 느릅나무도 보지 못하고 작고하고 말았다.

   시인의 고향도 평안도 강계로 되어 있다. 북에서 남으로 와서 고향을 잃고, 다시 바다 건너 삶의 거처를 마련했으니 시인은 이중의 실향민인 셈이다. 실향민에게 고향은 어떤 걸까. 그것도 외부 힘센 나라와 남북한 단독 정부를 고수하려는 비장한 사람들에 의해 반으로 나뉜 나라, 게다가 물리력을 동원해 선을 넘나들지 못하도록 지키는 데만 골몰한 나머지 어떤 수단으로든 다가갈 수 없는 그런 고향이라면 유감스러운 게 당연하다. 절반의 고향을 잃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마음, 떨어져 사는 관성에 의해 원래 한몸인 것을 잊어버리는 마음이 있다면 이 역시 유감이긴 할 텐데 시인은 부끄러운 형제로 에둘러 표현한다.

   북녘 하늘을 우러르고 북녘 들을 그리는 시인에게 고향 쪽으로 한 발짝 디딜 수 없는현실은 참괴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빨갱이 파랭이 색깔 공세로 분단을 고착화할 게 아니라 서로 섞이는 일을 버릇하면 좋을 텐데, 현실은 한 발짝 다가서려는 마음조차도 주위 눈치를 보며 자기검열로 주저하게 만드는 감이 있다.

   『백범일지를 들고 해주로, 진달래꽃을 들고 정주로, 시인이 자신의 고향인 강계로 갈 날이 너무 뒤에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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