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베리(안응렬 역), 『전시조종사』, 신원문화사, 2003.
저자가 『어린왕자』를 쓰기 한 해 전에 썼던 소설이고, 그 다음해 1944년 2차대전에 정찰비행단으로 복귀했다가 비행 중 행방불명된다. 소행성 B-612에 어린왕자와 함께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설엔 정찰 비행을 담당하는 조종사가 불리한 전시 상황과 적기에 노출되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절박한 처지에서 인생에 대한 나름의 통찰과 고민을 들려준다. 미술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항공회사에서 우편비행을 담당하다가 리비아 사막에 추락하여 5일간 생사기로에 서기도 했던, 모험심의 소유자가 들려주는 ‘모험’에 대한 이야기 중 전쟁은 모험이 아니란 내용이 인상적이다.
“전쟁은 진짜 모험이 아니라 모험의 대용품밖에는 되지 않는다. 모험이라는 것은 그것이 만들어 놓은 관계, 그것이 내놓은 문제,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창조성의 풍부에 있다. 그저 동전을 던져 앞쪽 뒤쪽을 가리는 노름에 생사를 걸었다고 해서 그것이 모험이 되지 않는다.
전쟁은 모험이 아니다.
전쟁은 일종의 병이다. 티푸스 같은 병이란 말이다.”
‘저항’에 대한 저자의 인식도 옮겨 보자.
“저항이란 그것이 너누 늦게 일어나는 경우에는 반드시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저항을 일깨우는 것이 된다. 한 알의 씨앗에서처럼 이 일깨움이 나무 한 그루를 솟아나게 할지도 모른다.”
저항할 때 저항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히지만, 뒤늦은 저항도 그렇지 않을 때보다 뒷날을 위한 씨앗을 심는 유의미한 일임을 생각하게 한다.
아래 구절은 도덕주의자로의 저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내가 만일 나를 재발견한다면 나는 가장 강한 자이다. 만일 우리의 인도주의가 인간을 회복시킨다면 말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공동체를 세울 줄 알고, 그것을 세우는 데에 희생이라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유효한 기구를 쓴다면 말이다. 우리 문명이 세워놓았던 우리의 공동체 역시 우리 자신의 이익의 총계가 아니고, 우리 희사의 총계였다.”
공동체가 잘 돌아가려면 사사로운 이익 추구로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베풀고 나누는 삶이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강제가 아니라 자의로 희생(손해를 달게 감수하는 마음이라 하자)이 선택되는 삶이 공동체를 풍요롭게 할 것이다. (이동훈)
'감상글(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세이> 반 고흐의 태양, 해바라기 (0) | 2017.01.18 |
---|---|
<비평서> 법정에 선 문학 (0) | 2017.01.09 |
<에세이> 이천 년의 꽃 (0) | 2017.01.04 |
<소설> 고래 (0) | 2016.12.11 |
<수필> 벼랑에서 살다 (0) | 2016.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