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복, 『법정에 선 문학』, 한티재, 2016.
일곱 건의 필화사건을 다룬 책이다. 필화를 입은 책의 내용과 법정 다툼을 소개하고 저자의 생각을 밝히는 구성이다. 저자는 후기에서 필화를 겪은 작가의 영혼을 위로하며 간단한 에피소드도 남기는데, 「한라산」필화사건의 이산하 시인을 두고, 진실을 남기려는 노력을 평가하며 그 짐을 나누고 싶었단다. 그래서 그랬을까. 이산하 편은 생각이 비슷한 두 사람의 영혼이 만나서 문학과 정의에 대해서 반짝반짝 빛을 내며 이야기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근래 문화계의 블랙리스트 명단에 앞장섰던 사람뿐만 아니라 공무원으로 어쩔 수 없이 일을 수행했던 사람들의 뒤늦은 고백도 들린다. 채형복, 이산하 두 사람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우리는 적들의 말보다 친구들의 침묵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말을 기억하고 인용하는데 최근의 일과 맞물려 미묘한 여운을 던져준다.
소설 『즐거운 사라』로 필화를 겪은 마광수 교수의 경우엔 음란성 여부 문제와 표현의 자유가 맞물린 경우다. 구중서, 손봉호, 이문열 등은 강도 높게 비판을, 다수의 제자와 장정일(장정일은 이후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똑같이 필화를 입는다) 등은 옹호하는 입장으로 소개되어 있다. 마광수 교수는 경직된 엄숙주의에 따른 경건주의와 도덕주의의 만연이 문학의 성장을 정지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게 만든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는데, 저자의 생각도 비슷하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에 좀 더 솔직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야한 사람’이 되고, ‘야한 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국가권력과 자본이 결탁하여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즐거운 사라’가 되어 ‘즐거운 혼란’(‘즐거운 사라’에 대한 장정일의 말)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시인이면서 법학자다. 서문에 밝힌 법학자에 대한 정의가 진솔하게 와 닿는다. 저자가 생각하는 법학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필화사건을 겪은 사람에게도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씻어주려는 마음이 한 권의 책으로 귀결되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이동훈)
'감상글(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세이> 천 배의 바람을 품다 (0) | 2017.01.26 |
---|---|
<에세이> 반 고흐의 태양, 해바라기 (0) | 2017.01.18 |
<소설> 전시 조종사 (0) | 2017.01.04 |
<에세이> 이천 년의 꽃 (0) | 2017.01.04 |
<소설> 고래 (0) | 2016.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