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운명의 캉캉

톰소여와허크 2017. 4. 18. 18:02


나혜석, 무희(1927-28)



박정윤, 운명의 캉캉, 푸른역사, 2016.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순하게 엄밀히 막아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주게

 

 

   소설에 인용되기도 했던 인형의 가후렴 부분이다. 아내로서 또 어머니로서의 의무만 충실히 수행해 주기를 바라는 남자 혹은 사회의 시선을 깨고 저 자신에 대한 의무”(입센, ‘인형의 집’)를 말하며 집을 나서는 노라는 나혜석의 운명까지도 바꾸어 버렸다.

   나혜석은 여성으로 그림 전시회를 가진 최초의 화가이기도 하고, 이혼 후 이혼 고백서를 발표하여 여자의 정조만 문제 삼는 사회 풍토를 비판했다. 이혼 원인을 제공했던 최린을 정조 유린 당사자로 고소하기도 하며 이슈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지만 우호적이지 않은 평판에 시달리며 쓸쓸한 말년을 보낸 걸로 알려져 있다.

   소설에서는 나혜석의 불행을 더 깊게 하는 엘리제 마담과 마담의 딸인 초이, 나혜석을 동경했던 독고휘열과 그의 아들인 독고완을 등장시키는 데 이는 저자가 선택한 허구적 캐릭터다. 초이와 독고완이 나혜석의 죽음을 파헤치는,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서사를 취한 데다 여기에 현재의 인물로 등장하는 역시 초이와 독고완의 원고를 통해서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구조를 한 꺼풀 덧대 놓았기에 나혜석에게만 집중하려는 힘은 분산된다. 거꾸로 밝혀진 그 이상의 전기를 나혜석에게 씌우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겠다.

   한용운을 찾아간 날, “개성과 생각이 분명하다면 그걸 지키는 것이 인간의 도리, 그렇게 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두 사람이 주고받는다. 인형이기를 거부하며, 내가 나일 수 있는 개성과 생각을 갖는 것이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길이고 동시에 예술의 뿌리임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