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무웅,『살아 있는 과거』,창비, 2015.
- 저자는 책머리에서 자신의 핵심 탐구 과제 중의 하나를, “선의에서 출발한 작가들의 노력은 왜 때때로 뜻한 바와 달리 예술적 빈곤으로 귀결되고 마는가”의 문제로 적시한다. 이때의 예술적 빈곤은 예술가 개인의 가난과 그로 인한 고통과는 무관해 보인다. 오히려 빈곤한 시절에 놀라운 예술적 성취를 보이는 경우가 적잖다.
한때 즐겨 읽었던, 천상병 시 구절에 대해서, “가난은 일차적으로는 물질적 결핍상태이지만, 천상병의 시에서처럼 유머러스한 온기 속에 표현될 때 그것은 다음 작품에서처럼 물질에 좌우되지 않는 형이상학적 고고함의 표상으로 승화된다”고 했는데 언급된 작품 일부만 옮겨 보자.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 「나의 가난은」중
『빌뱅이 언덕』의 권정생 작가를 두고, “가난과 질병을 벗어난 적이 없으되 자기 몸을 돌보는 일보다 자연을 사랑하고 약자를 대변하는 일”에 앞장섰음을 평가하며, “모두가 원위치로 돌아가 가난을 지켜야 한다. 가난만이 평화와 행복을 기약한다. 가난이란 바로 함께 사는 하늘의 뜻이다”라는 권정생의 말을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로 제시하기도 한다.
시의 현실 참여 문제를 논하며, 김남주 시인의 목소리와 비판을 감동적으로 또 아프게 받아들이면서도 시인과 다른 길을 걷는 것에도 의미가 있음을 말하는 대목에 저자의 목소리가 유난히 생생하다.
“혁명적 전환이 필요한 것은 한국사회만이 아니며 한국의 지배계급만이 아닐 것이다. 가까이는 변혁을 지향하는 운동세력 자신도 끊임없는 자기쇄신을 통해 거듭나야 하고 넓게는 지구현실 전체가 정의․평등․평화․자유․우애 같은 보편원칙에 따라 근본적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지구사회 전체가 이렇게 함께 달라져야 할뿐더러 물질세계와 정신세계가 동시에 더 윤리적인 쪽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육성을 내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전환의 주체가 있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누가 주도적으로 담당해야 하느냐는 의문은 살짝 남는다. 일차적으로는 이 글을 읽은 독자 자신이기도 하겠다.
오생근 평론집 『그리움으로 짓는 문학의 집』을 말하며 “쉬운 언어로 깊은 진리를 말하는 게 좋다”는 자신의 상식에 준하는 책으로 소개했는데, 저자의 평론집이 그런 상식의 의미 있는 결과물일 것이다. 읽을거리에 빠져, 말 그대로 살아 있는 과거를 만나고 온 느낌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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