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퉁사리 영감 / 김보일

톰소여와허크 2019. 1. 24. 11:33

퉁사리 영감 / 김보일

 

 

속진을 벗어나 청담을 나누길 좋아하는 퉁사리 영감은 네 쌍의 수염 대신 비늘이 없다 시간을 거스르는 것이 마뜩찮은 몸이 비늘두루마기를 벗어버린 것이리라 명교예절의 번다함일랑 벗어버리고 속곳도 없이 강호 청강에 굴레 벗은 말이 되어 일급수의 대숲 바람 속에서 표표히 꼬랑지를 흔드신다 일체의 걸림이 없으신 퉁사리 영감의 유유자적을 뵙길 청하는 시인 묵객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영감은 심산유곡 서늘한 물을 찾아 깊이깊이 숨어 버리셨다 대은조시(大隱朝市), 일찍이 큰 은자는 조정과 시장에 숨는다 하였으니 부디 코와 귀를 막고서라도 돌아오시라 이 도랑물의 흐릿한 속진 속으로

 

- 살구나무 빵집, 문학과행동, 2018.

 

 

* 퉁사리와 동자개(빠가사리)는 민물고기로서 네 쌍의 수염을 갖고, 비늘을 갖고 있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늘 역할이 외부의 적이나 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면이 있을 것인데 이들은 비늘이 거추장스러웠나 보다. “시간을 거스르는 것이 마뜩찮은이유라면 역류하는 반골 기질로 남들이 의지하는 비늘을 버린 게 된다. 또 다른 이유로 수염은 버리지 못했으니 그 자세한 내막은 퉁사리 영감도 모를 것이다.

퉁사리는 청탁을 엄하게 가려 깨끗한 물에 살기에 수질이 3급수 이하로 떨어지면 종을 발견하기 어렵다. 머리 모양이라든지 수염의 맵시 때문에 감투 쓴 양반을 연상케 하기에 시인은 아예, 퉁사리 영감이라고 칭한다. 물론 이 영감은 감투 또한 마뜩찮아 하는 성질을 지녔다. 시인이 소개한 대은조시(大隱朝市)는 진나라 왕강거의 반초은(反招隱)’에 나오는 구절이니, 현실 정치에 거리를 두고 야인으로 살더라도 아주 현실을 떠날 게 아니라 민초들의 삶에 도움이 되게끔 역할을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의중이 읽힌다. 이 요구가 진담이라고 하더라도 요구를 받는 퉁사리 영감의 선택도 곤혹스럽긴 할 것이다. “도랑물의 흐릿한 속진은 맑은 물에 사는 퉁사리에겐 죽음의 장소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은조시(大隱朝市)를 인용한 백거이의 중은(中隱)’ 일부를 보면,

<대은(大隱)은 조정과 저자에 살고 소은(小隱)은 산속으로 들어가지만

산속은 너무 쓸쓸하고 조정과 저자는 너무 시끄러워

중은(中隱)이 되는 것만 못하니 하급 관료로 숨어 산다>고 되어 있다. 세속의 실망스런 일에 발 담그기도 싫고 그렇다고, 현실의 일을 등한히 하거나 모르쇠로 사는 것도 염치가 아니니 사는 게 고민이다. 어떤 선택이든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것이 자신과 주위를 함께 위하는 길일 듯도 하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