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헌사(獻詞) / 김용락

톰소여와허크 2019. 9. 22. 22:59

헌사(獻詞) / 김용락

 

 

대중 가수 최백호 씨

 

누군가 보내준 유튜브에

최백호가 대중가요 봄날은 간다를 부른다

내가 이제껏 지상에서 본 것 중

최고의 절창이다

황홀하다

폐부를 찌르고

애간장이 녹는다는 표현의 의미를 실감한다

 

나는 그렇게 인생의 깊이가 어린 얼굴을

여태껏 본 적이 없다

몇 십 번을 되돌려 노래를 감상하다가

뒤늦게 그의 왼쪽 가슴에 꽂힌

노란 세월호 표식을 보고

나는 벼락에 맞은 것처럼 심장이 멎었다

 

지상 최고의 헌사였다

 

하염없이 낮은 지붕, 천년의시작, 2019.

 

감상-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로 시작되는 이 서정적인 노래엔 만남과 약속과 이별이 고스란히 다 담겨 있다. 백설희 노래로 1953년 발표된 것을 생각하며 전쟁 통의 무수한 이별과 무관하지 않을 거 같고, 내용을 따라가자면 남녀의 사랑과 이별이 연상된다.

이 글을 작사한 손로원 선생에 따르면,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시란다. 하나 남은 어머니 유품인 사진마저 피난지 부산에서 화재로 잃어버리고, 그 순간의 상실감과 이후의 그리움이 이 시로 결실했을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폐허의 땅에서 이별과 상실감으로 눈물짓는 사람들에겐 이 노래가 곧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2001년에 개봉된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은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는 얘기인데, 할머니가 연분홍 치마를 입고 마지막 외출에 나서는 장면에서 노래 봄날은 간다를 배경음악으로 쓴다. 봄날을 보내야 또 다른 봄날이 온다는 메시지도 있지만 사랑과 상실을 얘기하는 것은 영화와 노래가 다르지 않다.

<봄날은 간다>는 노래 좀 한다는 가수는 한 번씩 지나가야 할 코스인지 백설희 이후에도 조용필, 김정호, 한영애, 이선희, 장사익 등이 유튜브에 검색이 된다. 시인은 그 중에서도 최백호의 모습과 노래에 꽂힌다. 실제 영상을 보니 가수 노래에서 여느 때보다 한스럽고 절절한 느낌을 받게 된다. 201461일 녹화된 것이니 세월호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때다. 시인은 그 감동의 이유를 조금 늦게 안다. 양복저고리에 단 노란 리본을 보고서야 슬픔과 위로와 고마움의 정서가 벼락에 맞은 것처럼감전되어 온 것이다.

2014416, 세월호가 물에 가라앉았다.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과 선생님을 비롯해서 일반인까지 총 304명의 희생자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삼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세월호가 인양되었지만 침몰 원인이나 책임 소재가 명확하게 가려진 것 같지 않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은 시간이 지날수록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담게 된다. 세월호 사건을 확대시키지 않으려는 정권과 거기에 부응하는 보수 언론뿐만 아니라 세월호 피로를 말하는 사람들로 인해 노란 리본을 다는 자체가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일로 간주되고 자기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 되었다.

시인은 이전 시집(산수유나무)에서, 세월호 이후 누군가가 달아준 노란 리본으로 인해 고개를 숙일 때마다 / 노란 리본에 눈이 찔린다” (왜관역 노란 리본)며 어린 영혼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보인 바 있다. 최백호 씨의 노래에 공감하며 노란 리본에 동지의 정을 더하며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데서 시인의 정체성과 마음결도 헤아릴 수 있다.

앞서 봄날을 보내야 봄날이 온다는 영화 얘기를 잠깐 했지만, 봄을 더 살지 못하는 친구와 유가족에겐 이도 조심스런 말이다. 봄날은 같이 웃고 같이 우는 마음일 거란 생각도 해보면서, 최백호를 한번 더 리플레이한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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