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저 / 김인자
한때 내 어머니 그렇게 원했던 건 식구 수만큼의 은수저였다 임금님 수라에도 오른다는 그것만 있으면 모든 악귀로부터 우리 가족을 지킬 수 있으리라 어머니는 굳게 믿고 계신 듯하다 정작 식구 수대로 은수저를 마련하자 다락에 모셔두고 명절 때나 한 번씩 쓴 때문인지 악귀는 훤한 대낮에도 행복을 가장해 식구들을 괴롭혔다 나이 들어 관절 삐걱대니 다락에 오르는 일 힘에 부친다고 가까운 부엌으로 은수저를 옮기신 어머니 그 시절 우리들은 놋양푼에 보리밥을 비비면서도 무엇이 행복인지를 알았다 때마다 방귀 붕붕대는 보리밥이었으나 인생의 쓴맛 같은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니 함께 배부를 수 있는 보리밥보다 더 큰 것은 애초에 꿈꾸지 않았다 믿기 싫었지만 그래도 믿을 수밖에 없는 희망이 우리를 그곳까지 데려다 준 것은 어머니의 극진한 희생이었을 것이다 밤손님이 다녀가신 후 은수저는 보이지 않았다 행복은 아주 잠시 밥상 위에 머물다 가는 은수저 같은 것 어쩌다 막내가 내 은숟갈? 하면 그거 때마다 닦는 거 얼마나 골 빠지는 일인지 알기나 하냐며 버럭 화를 내시던 어머닌 신경쇠약에 걸리셨다 지문 닳도록 윤나게 닦은 은수저를 우리들 손에 쥐어주시며 세상에 없는 길 밥상머리에서 툭툭 던져 일러주셨는데 그 일 뒤 우리들은 더 이상 어떤 것도 비벼먹을 수 없게 되었다 신경쇠약에 발목잡혀 상처뿐이었던 어머니 생처럼 지금 내 인생도 그렇게 상처를 안고 떠밀려 가는 것이리라
-『슬픈 농담』, 문학의전당, 2004.
감상- 은은 황과 잘 어울리는 성질을 갖고 있다. 황은 비상의 재료로 쓰인다. 황이 든 음식에 은수저가 닿으면 황화은이 되어 은수저가 검어진다. 정적이 많은 궁궐과 사대부 집안에서 은수저를 많이 쓰는 이유다. 계란 노른자에도 유황 성분이 있으니 접촉이 많으면 은수저가 검어진다. 은박지를 깐 냄비에 은수저와 소금을 얼마간 넣고 끓이면 황이 떨어져나가 다시 은색이 된다고 하는데, 예전의 어머니는 수세미로 문지르는 일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작품 속 어머니는 식구 수대로 은수저를 마련하는 꿈을 갖고 하나하나 장만해 나간다. 덮고 자는 이불이나 지붕, 먹는 숟가락에 흔히 복 복(福)자가 새겨져 있다. 여기엔 가정이나 식구로부터 악귀는 물러서고, 식구들 수대로 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가난하더라도 한 식구끼리 머리 맞대고 양푼이 밥을 비벼 먹는 행복이 있었으니 어머니의 바람은 상당 부분 이루어진 것일 테다. 그런데 그만, 은수저를 도둑맞고 가정의 행복이 흔들렸으니 시집 제목처럼 ‘슬픈 농담’을 들은 듯하다.
애써 마음을 썼던 것이 허망하게 사라질 때의 상실감이 과민 반응과 정서 불안을 동반하는 신경쇠약으로 이어진 것이다. 은숟갈을 말하는 막내에게 어머니가 버럭 화를 내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 대한 피로로 인해 그리되었을 것이다. 주변의 상황과 자신의 문제로 인해 이전보다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 이유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남의 마음과 노동을 헛수고로 만든 밤손님이 여간 괘씸한 게 아니다.
어머니는 화를 주체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은수저에 손을 댄 도둑도 용서하기 어려웠을 텐데 장발장도 그런 도둑이긴 했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윤흥길)에서 아내 수술비 마련을 위해 도둑이 되려다가 자존심만 구기고 사라진 사내에도 생각이 미친다. 도둑 사정을 헤아리란 말이 아니라 바깥에서 보면, 더 긴요한 일들이 있지만 누구든 자기 안의 문제로 고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은수저를 잃어버린 것보다 밥을 같이 비벼 먹는 여유를 잃어버린 게 더 큰 상실일 수도 있겠다 싶은 거다. 어머니의 반응은 남은 가족에게도 조금씩 상처를 나누어주는 일이 되고 만다. 그 상처를 달게 받는 것도 마음의 여유일 수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이 그런 상처를 다른 누군가에게 옮겨주는 당사자는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시인은 악귀가 행복을 가장했다는 표현을 농담처럼 들려주었으나 행복이라고 믿는 한 귀퉁이엔 언제든 악귀가 동행하고 있는 게 인생이란 생각이 든다. 악귀에게 맹물 한 숟갈이라도 건네면 덜 괴롭힐까. 농담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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