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한국이 싫어서

톰소여와허크 2020. 3. 12. 02:23



* 그림은 책 표지로 사용된 작품. 정수진, ‘방향도 목적도’(2007)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민음사, 2015.

 

 

20대 중반의 직업여성이, 호주로 이민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그 또래의 눈으로 따라간 소설이다.

주인공 계나는 증권회사에 취직이 되지만 자신이 회사에서 하는 일에 아무런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여긴다. 호주 유학과 이민을 꿈꾸며 돈을 얼마간 모았지만, 다섯 식구가 사는 아현동 주택이 재개발 대상이 되면서 부모는 계나의 저축을 집 사는 데 보태기를 원한다. 언니 혜나는 서른이 넘었지만 커피숍 시급으로 일하고, 여동생 예나는 PC방을 전전하며 돈을 보탤 형편이 아니다. 이들은 중산층으로 편입되길 소망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계나의 생각이다.

계나는 회사 일도 그러하지만 아현역에서 역삼역으로 매일매일 출퇴근하는 자체가 지옥이다. 콩나물시루보다 못한 곳을 견디다가 계나는 폭발하고 만다. 부모에게 미안하지만 더 이상 서울 생활을 참지 않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남자 친구의 부모가 계나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선 보는 자리에서조차 별 말을 건네지 않아서 무안을 당하기도 했다. 돈으로, 학벌로 평가하는 세상이 지긋지긋했을 것이다.

호주에서의 삶도 결코 순조롭지도 않고, 오히려 고생의 연속이었지만 계나나 계나를 도와주었던 친구는 이민을 떠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는 입장이다.

 

혜나 언니나 예나가 호주 오기 싫어하는 건 정말 이해를 못하겠어. 혜나 언니는 계속 스타벅스에서 일해. 거기서 한 시간에 얼마 받으려나? 5000? 좀 오래 했으니까 6000? 그걸로 한국에서 생활이 돼? 그 돈 모아서 집 살 수 있어? 부모님 병들고 그러면 어떻게 해? 참 이상해. 하루에 여덟 시간씩 서서 일하고 화장실 변기 닦고 그러는데 연봉 1700 정도는 받아야 하는 거 아냐? 살 수는 있게 해 줘야지. 한창 때 여자가 얼마나 사고 싶은 게 많을 텐데. 군것질도 해야 하고 데이트도 해야 하는데. 혜나 언니는 여기 있으면 시집 잘 가는 수밖에 없어.

예나도 마찬가지야. , 공무원 시험 합격 못해. 이제는 9급 공무원 시험도 고시급이라는데 걔가 그 정도로 밤 새워 공부하고 그러지 않잖아. 그거 합격할 노력이면 호주 영주권 쉽게 딴다. 그리고 호주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게 한국에서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것보다 나쁘지 않을걸?”

 

한국의 부정적 모습을 적나라하게 노출한 대사가 아닐 수 없다. 또래의 시선 뒤에 있는 작가의 관점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나는 더 나은 사람이니까혹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착각과 믿음은 현실을 굴러가게 하는 동력이지만 대체로 우린 더 나은 사람도 못 되고, 하는 일마다 어떻게든 안 된다고 여길 때도 있다. 내 집 마련 혹은 투자라는 명분으로 어렵게 은행 빚을 내고, 나머지 인생은 빚 갚는 데 소모되고 마는 게 인생이라고 자조하는 이도 많다.

계나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를 모른다고 했고 실제 행복해 보이는 삶도 아니지만 분명, 매력이 있다. 자신이 행복해지는 쪽을 선택해서 움직이는 인물이니까.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