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시인 / 황동규

톰소여와허크 2020. 5. 12. 22:35




시인(詩人) / 황동규

 

 

고기를 잡지 않는 어부가 살았다

바다가 그의 귓전에 늘 머물러 있었다.

온 세상에 꾸중 들은 아이들만 보이는

어둡고 고요한 저녁이면

바닷속이 환히 뒤집어지기도 하였다.

어둡던 골짜기가 맑아지고

쌍쌍이 속삭이며

헤엄쳐오는 물고기들

허리에 오색(五色) 구슬 두른 놈도 있었다.

꼬리에 뽀오얀 등()을 단 놈도

두리번거리다 되돌아가는 놈도

섬들이 긴 숨 들이키고

가라앉기도 하였다.

 

모든 강의 밑바닥 바다에 닿듯이

마음줄 모두 내린 어부가 살았다

 

아꼈어, 그래 참 환했어,

추억 속에 나란히 헤엄친 물고기에겐 듯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두 손 내민다

온 세상에 꾸중 들은 아이들만 보이는

어둡고 고요한 저녁이면.

 

-『악어를 조심하라고?, 문학과지성사, 1986.

 

감상 시가 어떠해야 한다는 얘기는 시인의 수만큼이나 많고, 시인이 어떠해야 한다는 얘기도 적잖이 듣는다. 황동규 시인은 고기를 잡지 않는 어부를 시인에 견준다. 사실, 어부가 고기를 잡지 않으면 어부가 아니다. 생활을 말하지 않는 건 가짜라는 비판도 있을 법하지만 어부 이름은 그를 규정하지도 가두지도 못한다. 강태공 역시 한때 무늬만 어부였다. 물고기를 꿰지 않도록 일자 낚싯바늘을 써서 세월만 낚으니 일상생활이 될 리 없다. 물고기를 낚아 시장에 거래할 줄 모르는 남편을 견디지 못하고 아내는 집을 나가고 만다. 그런 강태공이 인생 후반기에 출세해서 현실적인 정치인이 되었으니 시인 칭호는 그의 인생 전반기에만 부여하거나 아예 박탈되거나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낚싯줄로 세월 낚는 시늉만 하고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불량 시인에 대한 경계심인지 황동규 시인의 어부는 낚싯줄 대신 마음줄만 내려놓는다. 그 마음은 온 세상에 꾸중 들은 아이들에게 열려 있으면서 형형색색의 물고기를 반겨 노닐기도 한다. 한마디로 마술과 동심의 세계인데, 만나는 사람에게 두 손을 내미는 어부의 모습에서 어부의 정체를 반쯤 알아차린 기분이 든다. 생활에 철저하게 무능했으며 거리에 쓰러져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던 두 어부의 이름은 김종삼과 천상병이다. 이들은 외상술을 얻지 못하는 날이면, 동료 문인들에게 빈 손바닥을 내밀어 술값을 얻어냈다. 김종삼은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에서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 빈대떡을 먹을 때 모여든 사람들이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천상병 시인은 추모시 김종삼 씨 가시다에서 종삼 형님에게 늘 신세지고 가르침을 얻었다고 했는데, 손바닥 내미는 것은 거꾸로 천상병이 원조일 가능성이 높다. 황동규 시인도 김종삼 시편을 높게 샀으며,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점박이 눈를 썼다.

그러니 위 시의 시인 운운하는 것은 황동규 개인의 시인론인 동시에 그가 좋아했던 시인의 영향을 기록해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꼈어환했어는 그 주체와 대상이 모두 생략되어 느닷없다는 느낌인데, 순진무구한 시인들의 아우라와 그를 좋게 보는 황동규 시인의 감정이 모호한 비율로 섞여 있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 세상에 온 것이 소풍인지 벌서는 것인지 둘 다 인지 수수께끼투성이지만 시인은 언제든 꾸중 들은 아이들을 편에서 함께 꾸중을 듣고 있는, 어둠 속에 얼굴을 펴는, 조금은 안돼 보이는 위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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