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목단강행 열차

톰소여와허크 2022. 6. 23. 22:59

목단강행 열차...

괜히 설레는 이름이다.

 

전광용(전광용문학전집1), 목단강행(牧丹江行) 열차, 태학사, 2011

  

- 전광용 소설가의 고향은 함경북도 북청이다. 해방 후 남북이 갈리고 서울에서 유학하던 전광용은 고향집과 서울을 어렵게 왕복하지만, 서울을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감금이 되어 곤경을 치른 후 1947년 봄, 서울로 내려왔고 그 이후 전쟁과 분단을 겪으며 다시 고향에 가지 못한다.

자전적 소설 목단강행(牧丹江行) 열차는 고향을 얘기한 작가의 수필 내용이 상당 부분 반영된 걸 보면 라는 삼인칭을 쓰지 않았으면 수필로 보아도 무방했을 것이다. ‘의 고향 북청은 여진족의 유적으로 알려진 옛 성터가 남아있는 곳이고, 진흥왕순수비가 있는 만령 시중대의 바닷가 경치도 좋단다. 서울에서 북청에 닿기 위해선 경원선(서울-원산)과 함경선(원산-종성)을 이용하면 될 거 같은데 작가는 왜, 소설 제목을 목단강행 열차라고 했는지 의문이 든다. 목단강은 백두산 뒤편으로 한참 지나 북청에서도 꽤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관련 부분을 찾아보면, “그의 집앞 길 건너 큼지막한 돌각담에는 한 그루의 수양버들이 가지를 늘여 여름 한 철은 사람들의 쉼터 구실을 했다. 그 돌각담에 올라서면 아득히 동해 바다의 물결이 아스라하게 수평선을 금 그었고, 눈 아래에는 학교 면사무소, 우체국, 장터들이 놓여 있는 큰 거리를 거쳐 상봉, 중봉, 하봉의 기름진 벌판이 바닷가 솔밭까지에 뉘엿하게 십여 리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벌판 동편 가장자리 산기슭으로 서울에서 목단강으로 통하여 가고 있었다고 했다.

북청 고향 풍경을 이야기하면서 산기슭으로 지나가는 기차가 목단강까지 내처 가고 있음을 묘사하는 대목이다. 당시에 이미, 기차를 갈아타지 않고 서울역에서 목단강역까지 기차 운행이 가능했다는 것인데 관련 사실을 알 수 있는 정재정의 글도 인용해 둔다.

 

서해와 동해를 연결하는 경원선은 동북해안을 북상하여 만주와 연해주로 뻗어간다. 급행열차가 서울-원산-청진-남양-나진을 달렸다. 1940101일부터 서울-목단강(牧丹江)에도 직통 국제열차가 운행되었다. 목단강은 시베리아철도 만주관통선과 도가선(도문-가목사)이 교차하는 군사도시로서 한반도와 유라시아대륙을 이어주는 결절지점이었다. 서울에서 경원선, 함경선, 도가선을 타고 27시간가량 달리면 목단강에 이르고, 이곳에서 열차를 갈아타면 유라시아 주요 도시에 갈 수 있었다.(- 정재정의 독사만필(讀史漫筆), ‘남북 철도연결에서)”

 

서울을 기점으로 삼으면 시베리아 열차로 가는 두 갈래 큰 길이 있는 셈이다. 경의선(서울-신의주) 타고 압록강 건너 단동을 경유하는 방법과 동해안 따라 두만강 쪽을 경유해서 목단강 방면으로 가는 길이다. 목단강의 목단은 모란이란 뜻이니 어떤 연유에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명쾌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으나 퍽이나 서정적인 이름이다. 목단강은 흑룡강성 목단강시를 지나는 강이며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와 경계를 대고 있다. 장춘, 하얼빈을 지나온 쑹화강이 목단강을 받아들인 흑룡강(아무르강)으로 합수되어 동해로 흐른다.

 

다시 소설 내용으로 들어갈 것 같으면 앞서 언급한, 바다와 기찻길이 보이는 돌각담에서 마을 어른인 와당태 영감이 일본으로 유학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대목이 이어진다. “기차 연기의 마지막 가닥이 사라질 때까지 이마의 굵은 주름 밑에 가늘어진 눈 가장자리에 아들의 모습을 더듬어 그리기도 하는와당태 영감의 모습에서 어머니 모습이 그대로 오버랩 된다.

많은 이산가족이 그러했듯이 불과 몇 시간 거리도 되지 않는 곳에 살면서, 아들은 어머니를 어머니는 아들을 보고 싶어 눈물 흘리면서도 다시 만나지 못하고 반세기가 그냥 지나가버린 게 소설이기도 하고 소설 같은 현실이기도 하다.

그 끝이 왔는지 어머니 백팔세 생신날을 맞이해서야 는 목단강행 특급열차를 타고 고향을 찾는다. 마침내 어머니를 만난 는 통곡하듯 울음을 터뜨리고 아들을 얼싸안은 어머니의 눈에도 눈물이 방울져 내리는데 누군가 잡아채는 느낌에 꿈을 깨고 만다는 이야기다.

 

어머니를 지척에 두고 뵙지 못하는 회한은 작가의 수필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두고 온 고향에선 작가는 아이의 생일을 챙길 뿐 부부의 생일을 챙기지 않는단다. 어머니가 뚜렷이 기억하고 있을 생일을 저희들끼리 기분 내는 것이 죄스러워 그렇단다. ‘추석날 도봉산에 올라 터뜨린 울음을 보면, 명절날 성묘 대신 등산을 해오며 애써 명절 분위기를 내지 않던 작가는 그러기를 30년이 지나서야 생각을 조금 바꾼다. 산에 갈 때 제수를 차려 북쪽을 향해 배례하며 가족끼리 제사 의식을 치르기로 한 것이다. 절을 하고 고향과 조상에 대해 아이들에게 말해주다가 작가는 사무치는 마음에 오열을 터뜨리고 만다. 또 그렇게라도 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1940년에 목단강행까지 다녔다는 기차는 현재 철원역에서 끊겨 있다. 전광용 작가도 생전에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고 1988년에 고인이 되었다. 소설 말미에 가 꺼내 읽은 시집 한 대목을 그대로 옮긴다. 천하(天何)의 시 속 고향이라는데 실제 그런 시인과 시가 있는지 작가의 창작인지 궁금한 시 한 편이다.

 

[나 사는 서울에서 예전 같으면 목단강행 급행열차로 천 리 길.

언 다섯 시간의 가쁜 길, 검불랑을 넘어 석왕사를 지나 고원 영흥을 떠나면서 옛 여진의 나라.

 

고향에 돌아가기 전에 청춘과 인생은 가고 주름은 늘고 사람은 남아서

오늘도 기쁜 품속에 돌아갈 수는 없는 몸, 슬픈 세월과 함께

목단강행 급행열차의 난이 지워진 시간표 없는 정거장 대합실을 탓하면서 오만분의 일의 한국지도를 펴놓고 여기는 휴전선.

 

잠시 천길을 따라 북어대가리를 뜯으면서, 기억이 착각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도시와 마을을 떠나와서 친북청에서 완행열차를 바꿔 타고 밤나무골의

할머니와 부모 형제를 찾아서 근심 걱정 끝에

-마음은 구름을 잡고.

얼어서 묻혀서 사는 산이나 바다나, 하늘을 우러러 사는

제 고향으로 가는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