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비가 내리는 날에는 여우가 되고 싶습니다

톰소여와허크 2022. 6. 29. 23:31

백우인, 비가 내리는 날에는 여우가 되고 싶습니다, yeondoo, 2022.

 

 

- 시집 쉼없이 네가 희망이면 좋겠습니다를 썼던 백우인 시인이 연달아 노크하는 부드러운 바람처럼 산문집을 내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여우가 되고 싶습니다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고, 어린 왕자를 간직하고 지냈던 백우인 시인이 어린 왕자를 불러 세워서 대화한 기록이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어린 왕자 이야기에 여우의 마음으로 달아놓은 말풍선이란다. 그러니 백우인 작가의 책은 어린 왕자사용법 성격도 있고, 어린 왕자안의 이야기를 밖에서 끄집어내서 새로운 이야기를 보탠 것이기도 하다.

 

어린 왕자를 읽으면, 꽃을 떠나온 어린 왕자가 별에 날아온 꽃을 사랑스럽다고 여기면서 거리감도 느끼는 내용이 나온다. 유리 덮개나 바람막이를 제때 가져오지 않았다며 꽃이 일부러 기침을 하는 듯한 모습이나 꾸며대는 말에 어린 왕자는 실망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말보다 행동을 보는 게 더 소중하다는 걸, 마음에 있는 사랑을 알아보는 게 필요했다는 걸 생각한다.

 

백우인 시인은 이 대목에 말풍선을 아끼지 않는다. 꽃은 소년의 마음을 차지하고 싶고 소년을 곁에 두고 싶었던 것인데 이를 표현하기 위해 아름다운 구속이란 단어를 찾는다. 하지만 구속이 이름답게 여겨지는 데에는 유효 기간이 있습니다란 말로 어린 왕자와 꽃처럼 때가 되면 따로 설 줄도 알아야 할 것을 생각하게 한다.

꽃이 어린 왕자에게 요구했던 유리 덮개를 이별의 순간에 꽃은 이제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유리 덮개가 있으면 꽃에게 이로운 것보다 해로운 것이 더 많으니 애초부터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별을 앞두고 꽃이 솔직해진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시인은 이 장면을 서툰 감정들은 상처를 냅니다. 엇갈리고 비껴가게 하죠. 그러고는 후회를 낳는 고약한 것입니다. 서툰 열정은 돈키호테 같습니다. 순수하고 맹목이죠. 자기의 생각과 태도를 잘 알지도 못한 채 바보가 되어가요.”라고 적는다.

꽃은 어린 왕자에게, 어린 왕자는 꽃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데 서툴다. 그래서 의도한 바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일이 생긴다. 후회할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럴 순 없다는 걸 삶이 가르쳐준다. 감정 표현이 능숙하다 해서 후회할 일이 안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익숙하지 않고 안전하지 않은 데서 오히려 낭만적인 기분과 강한 에너지가 흐르는 거라고 말풍선 빌려서 나도 한 줄 써본다.

어린 왕자엔 부끄러운 걸 잊어버리기 위해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신 일도 부끄러워진다는 술꾼도 등장하는데 백우인 시인은 부끄러운 마음에는 야단을 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이 말풍선엔 다른 말풍선이나 꼬리말 없이 공감 표시만 남겨두련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