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들끓는 사랑 , <소설> 돈키호테의 식당

톰소여와허크 2022. 6. 27. 15:57

김혜순, 들끓는 사랑, 학고재, 1996.

천운영, 돈키호테의 식당, 아르테, 2021.

 

- 두 권의 책. 김혜순 시인과 천운영 소설가가 돈키호테를 들고 스페인을 여행한 기록이다.

김혜순 시인이 스페인 미술과 문학의 거장인 가우디, 고야, 피카소, 로르까의 흔적을 탐방하며, 죽음과 고통, 그 죽음과 고통을 치료하는 예술과 웃음과 풍자를 생각했다면, 천운영 소설가는 돈키호테에 언급된 음식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스페인 요리를 바탕으로 한 풍성한 음식 문화에 대해 시공을 넘나들며 자유로이 얘기한다.

 

들끓는 사랑에선 피카소를 찾아 바로셀로나 미술관에 간다. 십대 대 겪은 누이의 죽음, 스무 살에 겪은 친구의 죽음 등으로 피카소가 질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었다는 전기적 사실을 떠올린다. 시인은 이 시기의 피카소 그림을 두고 모든 인간은 죽음이 던진 푸른 수수께끼에 얽혀 비감에 지쳐 있다. 어떤 유머도 그의 청색 시대의 작품에 들어 있지 않다는 감상을 전한다. <늙은 기타 연주자>(1903)와 로르까의 <악몽의 로맨스>를 연결하여 청색이 갖는 음울함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세르반테스가 이전의 기사담에서 돈키호테를 이끌어냈듯이 피카소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44점이나 모방하고 변형하고 강탈하는 과정을 소개하며 김혜순 시인은 거장을 익히면서 또한 그를 웃어 보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하며 피카소의 감정을 읽는다.

고야를 만나기 위해선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을 가야 한다. 지하 전시실엔 고야가 궁중 화가에서 물러나 자신의 집 벽화로 그렸던 <두 노인>, <두 마술사>(1820-1823) 등이 옮겨져 있다. 검은 그림으로 불리는 고야의 작품에서 시인은 더 젊어지는 고야를 느끼며 음울한 환희를 맛본다. “그의 불행은 그를 젊어지게 했으며 그의 그림들을 미래에 던져 주었을 것이다. 불행은 예술가가 짊어져야 할 최적의 산물이라고도 했다. 이 말은 세르반테스의 생애와 그의 작품 돈키호테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김혜순 시인이 약물(마법의 몰약) 조제를 둘러싼 돈키호테와 산초의 대화를 언급하더니 천운영 소설가도 그 부분을 흥미로워한다. 돈키호테에겐 일부 효험이 있는 것을 산초가 먹었더니 갖은 부작용이 생긴다. 양을 공격하는 돈키호테를 저지하기 위해서 양치기들이 쏜 새총에 돈키호테는 갈비뼈와 어금니가 부서지는 낭패에 직면한다. 게다가 그 약병마저 깨어지는 바람에 돈키호테 역시 정작 필요할 때는 약물을 써 보지도 못한다.

돈키호테가 한때 짝사랑하다가 그친 여인, 산초의 눈엔 그저 힘이 세서 몽둥이 잘 던지고 목소리 크고 입담 좋은 농사꾼 처녀인 둘시네아 델 토보소. 책 주석에서 둘시네아가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이는 솜씨만큼은 라만차를 통틀어 어느 여자보다도 뛰어났다는 구절을 발견한 천운영 소설가는 염장 돼지라 하면 일단 하몽을 떠올릴 수 있다. 돼지 뒷다리를 염장해서 말린 스페인 햄이라고 할까. 껍질이 붙어 있는 삼겹살을 소금에 절인 판세타, 삼겹살에서 지방만 잘라서 염장한 토시네타. 토시노는 얇게 썰어 혓바닥에 올려놓으면 버터처럼 녹는다. 실제로 겨울철에 주요한 지방 공급원이기도 했다.”며 관련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라만차의 부자 카마초의 결혼식에서 산초는 자기가 가진 빵조각을 큰 가마솥 하나에 적셔 먹고 싶어하는데 가마솥 음식이 푸체로란다. 온갖 고깃국물이 다 들어간 음식이다. “푸체로를 한 솥 끓이면 일단 고기부터 먼저 건져 먹고 그 국물에 감자나 콩, 피데우아 등을 넣고 끓인 수프를 나중에 먹는다며 진한 국물에 말린 근대까지 넣으면 우리의 장터 국밥과 비슷하다고 소개한다.

 

들끓는 사랑돈키호테의 식당은 스페인 예술의 흔적을 좇고, 음식문화를 통해 소설 내용을 환기하게끔 한다. 둘 다 돈키호테에 어지간히 미친 사람들의 스페인 방문기 성격이 짙다. 책을 읽다 보니, 주제 하나를 대강 정해서 스페인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산초가 즐겨 구사한다는 속담의 흔적을 찾아서식의 주제도 괜찮을 것이다. 성주가 되게 해준다는 맹랑한 말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는 어리석고, 바른 말 잘하는 산초가 문득 그립다. 외국어 구사까지 그럭저럭하는 산초 가이드가 옆에 있다면 라만차 주점에서 그곳 전통주와 하몽 안주로 맛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런 중에 풍차로 돌진하는 낭만 대신에 이다음엔 어디를 걸을까를 지도에서 짚다가 졸기도 하는.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