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산문> 그린 노마드

톰소여와허크 2023. 1. 1. 12:22

김인자, 그린 노마드, 학이사, 2022.

 

 

감상- 김인자 시인의 여행 산문이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쓰던 시인은 현재는 대관령 숲에 거주지를 두고 이곳에 머물 때가 더 많다. 그렇다고 시인의 여행이 끝난 것은 아니다. 해외로 다녔던 날의 기억을 불러오고, 국내 사찰을 찾아가 풍경소리를 듣고 오기도 한다. 전보다 활동 폭이 좁아졌을 순 있으나 여행의 밀도는 여전히 알뜰하고 내밀하다.

근래, 믹스커피 서른 개로 지하에서 221 시간을 견디며 삶의 불빛을 좇던 광부 소식을 들었기에 시인의 글 중에 커피와 차 이야기가 눈에 크게 띤다.

말라위 퉁가의 차밭에서 시인이 만난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 일하고 버스비를 아끼려 서너 시간 걸어서 귀가하면서도 오직 차만은 마음껏 마실 수 있다며 웃는 사람들이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시인은 비싼 브랜드 커피를 선호하지 않게 되었단다. 절대빈곤층이 너무 많은 현실과 그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비싼 커피에 손이 가지 않은 거다.

시인이 여행지에 믹스커피를 꼭 챙겨가는 사연은 또 있다. 모로코에서 사하라사막으로 지프투어와 낙타투어를 하던 중 허리를 다쳐 베두인의 천막에서 하루 더 머물게 되었을 때 모래언덕과 별을 실컷 보는 이상으로 커피 생각이 간절했는데 그때 안내자 무함마드가 내어준 믹스커피 맛을 잊을 수 없어서다. “무함마드가 내게 그랬듯이 나도 누군가 간절히 그것을 필요로 할 때 짠! 하고 내놓는 일, 그것은 사소한 선물 하나로 산타가 되어보는,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하는 시인의 말은 그 근사일 일에 인색해지는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다.

시인이 안나푸르나 산 밑 담푸스 마을에 머물 때다. 시인이 찾아간 집의 그녀는 매일 아침 찌아(밀크티/인도에선 짜이’)를 대접해주고 시인은 답례로 믹스커피를 건넨다. 6년 후에 다시 찾을 때도 그때 찍은 사진과 함께 믹스커피를 선물로 내준다. 시인과 그녀, 잠시 만나고 다시 못 만날 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우정이란 생각이 든다.

시인은 담푸스 마을의 그녀를 생각하며 여행은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을 몇 시간 혹은 며칠로 축약한 압축파일 같은 건 아닐까. 좋은 여행지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의 의미란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틈이고 쉼인 동시에 피안의 문을 여는 일종의 열쇠 같기도 하다. 그것이 차(커피)가 가진 힘이 아니고 무엇이랴.”고 덧붙인다. 여행지에서 차 한 잔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고 사람 마음을 열게 해주는 것임을 시인은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시인의 커피 기호에서도 동질감을 느끼지만 가난한 이웃 앞에 차 한 잔의 값을 아끼는 걸 자랑하지 말자는 말씀에도 공감이 간다.

김인자 시인은 내소사에 몇 차례 방문하여 만다라 문양을 떠올렸지만 내게 내소사는 구체적 이미지로 남아있지 않다. 오래 전, 내소사 못 미처 어디쯤에선가 추위에 떨며 자판기 커피를 마시던 감각만 희미하게 남아있다. 시인은 이 책을 여행자의 주머니에 넣어주고 싶다고 했는데 주머니 작은 외투가 고민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