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채현(김기린 그림), 『강태풍 실종 사건』, 우리교육, 2023.
- 『강태풍 실종 사건』은 박채현 동화작가의 세 번째 동화책이다. 동화 중 가장 마음을 들뜨게 하는 건 모험 동화다. 모험은 그 자체로 신나기도 하지만, 모험을 통해서 동화 속 주인공은 이전보다 한층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성장은 알게 모르게 독자의 성장을 견인한다.
동화 속 강태풍은 어머니와 갈등관계다. 강태풍에게 어머니는 좋아하는 게임을 막는 사람이니까. 강태풍은 밖에서도 고양이 밥을 발로 차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말썽쟁이기도 하다. 그런 강태풍이 쥐똥나무 울타리에서 갑자기 사라진다. 이 세상에서 다른 차원으로, 현실에서 판타지로 넘어가는 장면이다.
그 과정에 몸이 작아지며 동물의 말을 알아듣게 된다는 설정은 셀마 라게를뢰프의 『닐스의 모험』을 떠올리게 한다. 닐스는 자신이 괴롭히던 거위를 타고 미지의 세상을 경험하는 중에 주변을 돕는 아이로 거듭난다. 반면 『강태풍 실종 사건』의 강태풍은 ‘모락모락 숲’으로 와서 현실 공간에서 있었던 지난 일로 인해 연거푸 고생한다. 또 『닐스의 모험』이 뜻밖에도 스웨덴의 지리와 풍토를 교육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면, 『강태풍 실종 사건』은 자연스럽게 인성과 환경의 소중함이 이야기에 묻어나게끔 했다. 셀마 라게를뢰프의 정신이 한 세기를 훌쩍 건너뛰어 박채현으로 이입되었는지, 두 작가는 생명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며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동화의 여러 장면 중 강태풍 실종을 접하는 학급 반응도 유쾌하고 따스하다. 놀부 후예 같은 강태풍이 사라진 뒤 마침 자연의 태풍을 수업하는 시간, 태풍(강태풍)이 없으면 평화로워질 거란 시선에 담임선생은 태풍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공기를 깨끗하게 하고 지구 온도를 조절하는 구실을 한다는 거다. 이에 “강태풍도 늘 심술부리는 건 아니었어. 지난번에 내가 우유 당번일 때 우유 상자를 같이 들어 줬어”와 같은 친구의 말이 이어진다. 겉으로 악당으로 비춰지는 아이 내면에도 선한 마음이 간직되어 있음을, 일면만 가지고 섣불리 판정해서는 안 되는 사정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는 것도 동화의 순기능으로 볼 수 있다. 재미난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어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하고 더 나은 행동과 삶에 대한 지향을 품게 해주는 것이 동화 세계다. 좋은 동화책 한 권이 애정 어린 말이나 훈육보다 효용가치가 적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책은 닫아도 모험은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책 속으로, 장롱 속으로, 구슬 속으로, 느티나무 구멍으로 쓱 말려들어 낯선 세계를 모험하는 신비한 일들이 내게 이뤄지고 그 기억을, 작가를 흉내 내어 한 편의 소설로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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