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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빨치산의 딸

정지아, 『빨치산의 딸』, 실천문학사, 1990. - 정지아 작가의 글은 『천국의 이야기꾼, 권정생』을 먼저 읽었고,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나중에 읽었다. 한참 후에야 두 책의 작가가 동일한 인물이란 걸 알게 된 바 있다. 나라 위해 애쓰는 애국자로 인해 전쟁이 있을 것 같으면 도리어 그런 애국자가 없는 평화가 낫다고까지 역설했던 권정생 선생은 전쟁으로 인해 선량한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걸 누구보다 아파했다. 동화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편들어주는 권정생에게 정지아는 자신의 부모 모습을 보았을 성싶기도 하다. 작가의 부모는 빨치산이다. 아버지는 전남도당조직부부장 출신이고, 어머니는 남부군 정치지도원을 지냈다. 부부는 해방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혼란의 시기에 지리산, 백아산 일대에서, 계급 없이 다 같..

감상글(책) 2024.04.14

매듭 / 한상호

매듭 / 한상호 홀쳐매지 마라 다시 풀기 어려우니 해결이란 묶인 것을 푸는 일 화해란 풀리고 녹아 물로 흐르는 일 분노한 손으로는 매듭짓지 마라 잘 풀려야 잘 묶은 매듭이니 -『어찌 재가 되고 싶지 않았으리』, 책만드는집, 2023. 감상 – 매듭을 잘 짓고 싶다. 누구든 그러할 것이다. 한때는 단단하게 매듭짓는 것이 매듭의 존재 이유에 충실한 것이라 여기고 남보다 성의껏, 잘 잡아매는 것이야말로 실속 있는 태도인 양 여겼다. 삶의 태도도 그렇다. 맺고 끊는 것을 잘하지 못하는 것을 인간적 결함으로 보는 시각이 적잖다. 결정을 미룬 채, 딱 부러지게 매듭짓지 못하는 것을 두고 우유부단하다고 스스로 자책하고 남도 나무란다. 시인은 이러한 인식을 애써 부정하는 대신 매듭의 또 다른 면을 통찰해서 우리에게 들..

감상글(시) 2024.04.14

331미터 앞 막국수집 / 강만수

331미터 앞 막국수집 / 강만수 331미터를 천천히 걸어가 막국수집에 들렀다 그 길은 평탄한 길이다 331미터는 어떨 땐 가깝게 여겨지지만 근거리라고 생각되지 않고 331미터는 멀다 아주 멀게 느껴졌다 7월 14일은 매우 흐린 뒤 비가 내린 날이었지만 손에 쥔 방울토마토 11개를 씹으면서 걸어갔다 길가 어느 집 담장 안 빨랫줄에 걸어놓은 빨간 셔츠와 노란 셔츠가 바람에 펄렁인다 그 집을 펄렁이는 난닝구와는 관계없이 지나간다 집 앞엔 흰 고양이와 검정고양이가 비를 피하고 있다 걷고 또 걸었지만 331미터는 줄어들지 않고 331미터는 3311미터처럼 느리게 다가온다 그러다 어떨 때는 331미터가 3311미터처럼 생각됐다 여름엔 그 길이 멀다고 느꼈지만 가을엔 당겼다 놓은 고무줄처럼 가깝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감상글(시) 2024.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