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에 가면 / 신정일 아무도 밟지 않은 길마다 눈 내리고 잠시 멎었다가 다시 퍼붓고 바람이 나뭇가지를 휘젓고 지나갈 때마다 산자락에서 하얀 송홧가루 날리고 나무마다 하얗게 하늘 바라기를 하는 섬진강 강물이 여울져 흐르다가 다시 잠잠해지는 강가에서 겨울의 소리인가 봄의 소리인가 모를 낌새를 느끼다가 적성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가 창구에 앉은 여자분에게 물었다 삼십 년 전인가 이십여 년 전이던가 맡겨둔 걸 찾으려고 왔습니다 똥그란 눈으로 묻는 여직원, 예금인가요? 아니요, 그리움입니다 잊으면 안 될 그리움을 맡겨두었거든요 그제야 빙긋이 웃던 그 여직원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꿈, 잃어버린 사람 잃어버린 소망을 찾을 수 있을까? ㅡ『아직도를 사랑하는 까닭은』, 작가, 2023. 감상 – 위 시의 한 구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