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724

우체국에 가면 / 신정일

우체국에 가면 / 신정일 아무도 밟지 않은 길마다 눈 내리고 잠시 멎었다가 다시 퍼붓고 바람이 나뭇가지를 휘젓고 지나갈 때마다 산자락에서 하얀 송홧가루 날리고 나무마다 하얗게 하늘 바라기를 하는 섬진강 강물이 여울져 흐르다가 다시 잠잠해지는 강가에서 겨울의 소리인가 봄의 소리인가 모를 낌새를 느끼다가 적성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가 창구에 앉은 여자분에게 물었다 삼십 년 전인가 이십여 년 전이던가 맡겨둔 걸 찾으려고 왔습니다 똥그란 눈으로 묻는 여직원, 예금인가요? 아니요, 그리움입니다 잊으면 안 될 그리움을 맡겨두었거든요 그제야 빙긋이 웃던 그 여직원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꿈, 잃어버린 사람 잃어버린 소망을 찾을 수 있을까? ㅡ『아직도를 사랑하는 까닭은』, 작가, 2023. 감상 – 위 시의 한 구절처..

감상글(시) 2024.02.26

<에세이> 동네 책방 분투기

박태숙 강미, 『동네책방 분투기』, 학이사, 2023. ㅡ『동네책방 분투기』의 저자는 책방지기 박태숙과 소설가 강미다. 두 사람은 울산에서 국어교사로 같이 근무했던 인연이 있다. 경주 외곽이고 울산 북쪽인 산마을에 책방을 낼 궁리를 박태숙 선생이 하게 되자 평소 함께 나눌 문화공간의 꿈을 간직한 강미 선생이 응원을 해온 것이다. 책방 홍보도 겸해서 책방 설계와 진행 또 그 운영 상황까지 공유함으로써 비슷한 일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게끔 하자는 데 두 사람은 의기투합한다. 그 결과로 나온 책이 『동네책방 분투기』다. 책방 이름인 는 책방지기, 카페지기로 역할을 분담한 아내와 남편의 이름을 살려서 호칭한 걸로 보인다. 코로나를 지나며 여섯 해를 이어오고 있는 책방엔 여러 인연들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

감상글(책) 2024.02.19

<에세이> 일흔에 쓴 창업일기

이동림, 『일흔에 쓴 창업일기』, 산아래 시, 2023. -대구 앞산공원 쪽에 은적사가 있고, 그 옆자락에 안일사가 있다. 그 중간쯤 산 아래 남부도서관이 있고 큰길 건너편 카페골목 초입에 시집 전문 책방인 ‘산아래 시’가 있다. 『일흔에 쓴 창업일기』는 책방지기인 저자가 시집 전문 책방을 개업하기까지의 준비 과정과 운영의 묘를 밝히고 그 사이에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간명하게 기록해 놓은 책이다. 왜 하필 시집 전문 책방인가 하는 의문엔, 독자를 만나지 못하는 시집에 대한 안타까움이 시집 전문 책방으로 이어지게 된 거라고 말한다. 차 안에 늘 시집을 갖고 다니고 읽은 시집을 선물하는 평소의 태도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저자는 우연히 읽은 시가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때로 죽비로 내린다고..

감상글(책) 2024.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