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놀피니 부부의 자화상, 1434.
엘리자베트 벨로르게(이주영 역), 『반 에이크의 자화상』, ㈜뮤진트리
- 플랑드르 화파의 문을 연 화가이자, 이전과 다르게 자기 그림에 사인을 넣은 것으로도 유명한 반 에이크의 일대기다. 남아 있는 얀 반 에이크의 전기가 부족한 상황에서 저자의 상상력으로 메꾸려는 유혹이 많았겠지만, 저자의 글은 있는 그대로의 전기를 최대한 연결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고로 색깔을 구별하지 못하게 된, 반 에이크가 자신의 생을 글로 남기려는 시도를 했고, 이 책이 그 결과물이라는 형식을 빌려 소설은 전개된다.
왕 못지않은 권력을 지닌 필리프 공작의 후원으로 반 에이크는 금전적으로 윤택한 편이었고, 계속되는 그림 주문에 짬을 내기 어려웠지만, 화가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과 형에 대한 의리로, 몇 년에 걸쳐 켄트의 제단화 ‘어린 양에 대한 경배’를 완성한다.
영감을 주고 이성을 사로잡는 여성보다 평범한 여성을 선택해 결혼한 반 에이크는 그녀로부터 배려와 자유와 안정감을 얻었음을 말하는 대목이 있으니 실제 화가의 삶이 반영되었는지, 저자의 바람인지 살짝 궁금해지기도 한다.
소설의 마지막은,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과 ‘붉은 터번을 한 남자에’ 대한 인상이다. 자화상을 그리며 붙인 말을 옮겨 적는다.
“내 안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모래언덕, 바람, 말, 브뤼헤에서 멀지 않는 해변에 있는 내 청춘의 바다가 느껴졌다. 내 개인 아틀리에에는 모든 아틀리에가 담겨져 있었다. 나의 자화상을 보니 흥분되었다. 자화상은 나의 그림 인생을 요약해 보여주는 것이었다. 내가 어떤 그림 인생을 살았든 간에……. 자화상을 그리면서 가볍고 자유로워졌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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