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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아닌 척 / 유은희

애써 아닌 척 / 유은희 다른 색을 칠했다고 네 맘이 숨겨지겠니? 옆구리에 작은 벨까지 차고 안 기다린 척은 몇 번을 고쳐 채운 자물쇠 자국 좀 봐 이미 너도 흔들리고 있었잖아 ㅡ『수신되지 않은 말이 있네』, 애지, 2023. 감상 – 아닌 척 긴 척. 이때 ‘척’은 그럴듯하게 꾸미는 거짓 태도나 모양을 일컫는 말이니 진실이 아니라 진실을 가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전적 의미는 분명 그러하지만 진실이란 게 뚜렷하고 적확한 형태로 있는 게 아니다 보니 한 쪽이 분명하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 오히려 불편해지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두려움을 이겨내며 언제든 진실 편에 서려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헌신이 세상을 좋은 쪽으로 바꾸어 왔다고 믿지만 그 반대편 사람들도 자신을 진실의 편이라고..

감상글(시) 2024.02.14

동네 의원 / 윤복진

동네 의원 / 윤복진 우리 동네 차돌이 의원이라오. 동네 안에 이름 난 의원이라오. 앞담 밑에 흙 파서 가루약 지어, 풀이파리 따다가 싸서 주어요. 동네 애들 병나면 솔잎침 놓고, 약 한 봉지 써 주면 당장 나아요. -『꽃초롱 별초롱』, 아동문예예술원, 1949/ 창비, 1997 감상 – 아동문학가 윤복진(1907〜1991)의 삶과 인간관계를 짚어볼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은 가운데, 2022년 윤복진의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던 상당한 자료가 대구시에 기증되었고 현재, 대구근대역사관에서 ‘동요의 귀환’이란 이름으로 윤복진 기증 유물 특별전(2024.1.30.〜3.31)이 이어지고 있다, 여느 때보다 윤복진에 대한 관심이 높을 때지만 윤복진 삶과 그 시대를 함께 조망하는 작업들은 더뎌 보인다. 먼저 동시 한..

감상글(시) 2024.02.11

간이역 같은 집을 하나 갖고 싶다 / 강인호

간이역 같은 집을 하나 갖고 싶다 / 강인호 조용한 시골 어느 마을에 간이역 같은 집 하나 갖고 싶다. 미운 사람 고운 사람 모두 쉬어 갈 수 있는 양옆으로 늘어지는 감나무 아래 평상을 두어 잠시 여유를 부리면 누구든 햇살 가득 담은 앞마당에 발 담그고 싱그런 바람에 앞 단추 몇 개는 풀어 젖히고 바짓가랑이 둘둘 말아 올린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앉아있어도 누워있어도 좋다. 가슴 가득 푸른 산이 서늘하고 파란 하늘에선 몽실몽실 구름이 동화를 쓰는 아무런 생각 없이 너도 아이처럼 웃어볼 수 있으리. 야트막한 뒷산엔 오솔길도 여러 개 열어 놓을 것이다. 갓난아이 손톱만 한 들꽃들이 구석구석 지천으로 널리고 바람에 자지러지는 풀잎들 방울방울 떨어지는 햇살에 찰랑찰랑 소리를 내면 아무런 생각 없이 너도 꽃처..

감상글(시) 2024.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