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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아니 이소선 / 이철산

전태일 아니 이소선 / 이철산 전태일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누구길래 시민들이 돈을 모아 잠시 살았던 옛집을 사들이고 무슨 마음으로 노동자들이 손을 모아 허물어진 옛 집터를 되살리고 마침내 ‘전태일’ 문패를 달고 기억의 숲 희미한 길을 되밟아 여기까지 왔냐고 묻습니다 대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살았던 전태일 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일당 50원을 벌기 위해 햇빛도 들지 않고 허리도 펼 수 없는 작업장에서 다락방에서 하루도 쉬는 날 없이 15시간을 일하는 평화시장 어린 시다들을 위해 스스로 근로기준법과 함께 불타올랐던 스물세 살 청년 노동자 전태일 청년 전태일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한번은 들어봤다 할 겁니다 하지만 오늘은 전태일 아니라 이소선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스스로 노동법과 함께 불타..

감상글(시) 2024.01.10

<그림 산문집> 방방곡곡 사람냄새

김주대, 『방방곡곡 사람냄새』, 시와에세이, 2023. 향숙 김밥, 은주 칼국수. 언젠가 들렀던 가게 이름이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부부가 영업을 같이했을 것이고 가게 이름의 주인이 누구냐고 실없이 물었다가 안주인의 이름을 딴 것이란 얘길 들었다. 지나는 길에 한 번 들른 게 전부인 까닭에 가게의 영업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왠지 친밀감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는 인상을 갖고 있다. 훈기네상회는 김주대 시인이 방방곡곡을 다니다가 만난 슈퍼의 이름이다. 시인의 그림 산문집 『방방곡곡 사람냄새』는 훈기네상회 이야기로 시작된다. 슈퍼 주인인 아버지와 슈퍼 이름의 주인인 아들이 주고받는 말을 재미나게 소개한다. 사탕을 탐내는 아들과 소주를 축내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이야기 끝에 아들은 자랑스러운 아들은 못 돼도 착한 ..

감상글(책) 2024.01.09

산에서 2/ 한성기

산에서 2 / 한성기 밥만 먹으면 사람들은 논에나 밭에 가 있었다. 밥만 먹으면 사람들은 거기서 하늘이 길러 주는 곡식의 아랫도리를 조금씩 거들어 주고 있었다. 산에서 살면서 내가 본 것은 무엇인가 시중드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여기저기에 허리를 굽히고 학처럼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 산에서 살면서 내가 본 것은 바꾸어서 말하면 엄청나게 커다란 눈부신 공간인지도 모른다. 밥만 먹으면 사람들은 논에나 밭에 가 있었다. 사람들은 거기서 하늘이 길러 주는 곡식의 아랫도리를 조금씩 거들어 주고 있었다. -『산에서』 배영사, 1963 / 『한성기 시전집』 푸른사상사, 2003, 감상 – “아득한 선로 위에/ 없는 듯/ 있는 듯/ 거기 조그마한 역처럼 내가 있다”. 한성기 시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역」(1952)의 ..

감상글(시) 202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