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550

<산문> 길에서 역사를 만나다 6,107km

우동윤, 『길에서 역사를 만나다 6,107km』, 학이사, 2024. - 저자 우동윤은 방송국 기자이며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다. 그는 오토바이 타는 것도 즐긴다. 이 세 가지 일 혹은 취미가 책으로 결실했다. 방송국 기자답게 의미 있는 기삿거리를 찾듯 나선 게 일본에 의한 조선인 강제 동원의 흔적이다. 사진작가답게 강제 동원의 현장과 주변 상황을 기록사진으로 남겼고, 바이크족답게 현장에서 현장으로 이동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오토바이를 이용했다.   저자는 관부 연락선을 타는 것으로 한 달여의 일본 일주를 시작했다. 시모노세키(下關)와 부산을 잇는 항로는 1905년부터란다. 두 항구에서 일본 내륙 철도와 한국 내륙 철도까지 연결되면서 강제 동원이 수월하게 이루어졌고 그 연락선을 통해 일본 전역의 탄광, 댐, ..

감상글(책) 2025.03.03

<산문> 석재 서병오 필묵에 정을 담다

이인숙, 『석재 서병오 필묵에 정을 담다』, 중문출판사, 2018. - 시서화 세 분야에서 최고 경지까지 보여준 서병오(1862∼1935)에 대한 글이다. 책 내용 중 서병오에 대해 궁금증이 있었던 부분 위주로 메모를 새로 해본다. 서병오의 글 스승은 허훈과 곽종석이다. 허훈의 막내동생은 의병장 허위이고 서병오는 관헌에 쫓기는 허위를 숨겨준 인연이 있다. 곽종석은 파리장서 사건을 주도했던 독립운동가다. 또 그림과 글씨로 서병오에게 영향을 준 이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다. 이하응으로부터 석재(石齋)란 호도 받는다. 이하응의 스승인 김정희의 영향도 받는다. 서병오는 김정희가 강조했던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의 인문학적 소양을 체득해간다. 김정희 글씨가 많이 남아있는 영천 은해사와 울산 통도사에 서병..

감상글(책) 2025.02.20

<소설> 공장신문/처를 때리고/ 질소비료공장

『공장신문/처를 때리고(김남천), 질소비료공장(이북명)』, 한국헤르만헤세  -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는 논술대비 한국문학이란 표제를 달긴 했지만 사회주의 계열의 작가로 분류되는 두 작가의 작품을 출판 목록에 포함시킨 것은 평가할 만하다. 김남천의 『처를 때리고』(1937)는 출판 사업을 꿈꾸는 식민지 지식인의 이중적 태도를 잘 포착해낸 작품이다. 나머지 두 작품은 1930년 초 노동운동을 다루고 있다. 김남천(1911-1953)은 평양 성천 출신으로 평양고보를 졸업한 일본 유학파다.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임화와 함께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와 조선문학가동맹의 주요 인물로 활동한다. 김남천은 『공장신문』(1931)의 배경이기도 한 평양고무공장 파업을 지지하고 선전하는 일로 감옥에 복역하게도 되..

감상글(책) 2025.02.16

<산문> 시인이 되어 나귀를 타고

김춘수, 『시인이 되어 나귀를 타고』, 문장사, 1980.  - 신문연재를 모은 산문 책머리에 적기를, 산업화 사회에서 “도덕의 파괴와 도덕감각 및 도덕적 상상력의 둔화는 인간을 내부로부터 헐어버리는 요소”라고 했으며, 이러한 일에 대한 관심으로 시인은 산문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시인의 시편에 비해서 산문은 한층 친절하다. 부지런하다는 것과 바쁘다는 것>을 읽어본다. 바쁘다(忙)는 것은 마음을 어디다 두고 온 상태라서 편치 않아 보이고 불안해 보인다고 했다. 바쁘게 해서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삶에 대한 궁극의 목적은 있지만, “그 목적은 달성되지 않고 수단인 바쁘다고만 하는 어떤 상태의 포로가 되기만 한다”고 했다. 부지런다는 것은 좀 다르단다. 『벽암록』의 덕운(德雲) 일화를 예로 들며 치성인(癡..

감상글(책) 2025.02.12

<소설> 오순정은 오늘도

김양미, 『오순정은 오늘도』, 학이사, 2024.   책 뒤편 ‘작가의 말’을 읽으면, “그냥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냥 살아지는 건 아닌, 삶의 고단함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는 대목이 보인다. 그런 생각이 소설로 결실한 것인 양, 작가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혹은 주변 인물들은 대개 단내 폭폭 풍기는 고단한 삶을 살아간다.   오순정 가족의 이야기도 그렇다. 곱창집 주인 최미숙과 곱창집 직원 오순정은 어려운 형편에 악착같이 일하며 살았다. 다만, 현재와 노후 형편은 꽤 차이가 날 것으로 짐작이 된다. 최미숙은 교회를 열심히 다녀서 복을 받은 것으로 얘기하지만 오순정은 그 차이를 직감하고 있다. 무리해서라도 돈을 빚내서 집을 사고 집값이 두 배 이상 올라서 여유를 얻은 쪽과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치고 ..

감상글(책) 2025.02.09

<산문> 대전 충남 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김현정, 『대전 충남 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심지, 2013.   대구 경북의 문인 예술가들의 삶을 조명했던 『씨 뿌린 사람들』(백기만, 1959)로 인해 현진건, 이상화, 이장희, 이육사, 오일도, 백신애, 박태원(작곡가), 김유영(영화감독), 이인성(화가), 김용조(화가)의 삶과 예술이 어떠했는지 그 세부까지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고 이후 더 이들에 관심을 갖는 계기도 된 걸로 이해하고 있다. 서울 중심의 중앙 활동에 가리어 자칫 소외되기 쉬운 지역의 문학예술 활동을 공부하고 답사하고 정리하는 일은 퍽 소중해 보인다. 이번에 읽은 『대전 충남 문학의 향기를 찾아서』도 그러하다. 지역의 땅을 딛고 향기를 맡으며 자란 씨앗은 지역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예술이란 거목이 되어 풍성함을 드리울 것인데 그 흔적..

감상글(책) 2025.02.04

<소설> 빨간 풍차가 있는 집

장정옥, 『빨간 풍차가 있는 집』, 부카, 2023.  소설 중 표제작을 다시 훑어본다. 빨간 풍차에서 파리의 물랭 루즈가 우선 떠오른다. 물랭 루즈 하면 파리 몽마르트와 로트레크가 생각나는 정도가 나의 상식이다. 물랭 드 라 갈레트(Moulin de la Galette)와 헷갈렸던 기억을 더듬어 정리해보면, 르누아르가 그린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1876)와 고흐가 1886년부터 두 해 동안 여러 점 그린 물랭 드 라 갈레트>는 몽마르트 언덕 위 방앗간으로부터 유래한다. 방앗간에서 갈레트(빵)와 음료를 팔던 것이 술집과 무도회장을 겸한 카바레로 이어지고, 이후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을 장소를 옮겨 현재까지 식당으로 영업중이란다. ‘물랭 드 라 갈레트’와 달리 몽마르트 언덕 아래에 위치한 ‘물랭 ..

감상글(책) 2025.02.01

<에세이> 시인과 화가

윤범모, 『시인과 화가』, 다ᄒᆞᆯ미디어, 2021. - 저자는 미술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역임한 미술평론가다. 저자는 시가 곧 그림이고 그림이 곧 시라는 말을 인용하며 문학과 미술이 상호 영향을 주며 새로운 창작의 세계가 열리는 경우가 잦다고 했다. 저자가 소개하는 시인과 화가의 만남을 따라가면서 김병기 편과 이상화 편의 몇 장면을 발췌해본다.  100세 넘어서도 화가로 활동했던 김병기(1916-2022)는 저자에게 시인 이상과 백석에 대해서 증언해준 사람이기도 하다. 이상은 일본에 와서 김병기의 하숙방에서 하룻밤 자고 간다. 그때 이미 이상은 피골이 상접한 상태로 빗소리 때문에 잠을 청하지 못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고 얼마 뒤 그의 부음을 듣는다. 김병기는 평양에서 어릴 적부터 동갑내기 친구인 문학..

감상글(책) 2025.01.22

<소설> 흉터의 꽃

김옥숙, 『흉터의 꽃』, 새움, 2017. - 1945년 사흘 간격으로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인해 히로시마에서 14만 명, 나가사키에서 7만 명의 사망자가 있었고, 그 중에 4만 명 가까이는 조선인으로 파악된다. 또 사망자의 몇 배나 되는 부상자와 방사능 피폭자가 있었고, 이 소설은 그 중에서도 조선인 피폭자의 삶을 다루고 있다. 조선인 피폭자 중 상당수는 경남 합천 사람이다. 피폭의 대물림으로 고통받고 있는 피폭 2세들의 상황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이는 김형률(1970-2005)이다. 김형률의 부모가 합천 사람으로 히로시마에서 피폭을 당하고 돌아왔다. 희귀한 폐 질환을 갖고 있던 김형률은 자신과 비슷한 피폭 2세의 사례를 수집하고 공유하면서 피폭의 유전성을 증언하며 비핵평화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 되었고..

감상글(책) 2025.01.15

<미술 비평> 조르주 루오

발터 니그(윤선아 역), 『조르주 루오』, 분도출판사, 2012. 발터 니그는 책의 서문에서 뜻밖에 공자를 끌어들인다. 공자를 부른 이유는 현대 예술의 혼란과 관련이 있다. 현대 예술은 “무엇이든 흥미진진하고 신식이어야 한다는 병적 욕망이 근저에 깔려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뒤섞이고 있다. 상하좌우의 구분도 없다. 예술과 관련된 법칙은 모조리 그 효력을 상실했으며 실존 전체가 혼란스러워졌다. 인간은 이제 붙박이별을 기준으로 나아갈 바를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것이 다 미끄러지고 있다. 감정의 혼란과 정신의 혼미는 불행하게도 일상적 현상이 되었으며 판단의 잣대는 제거되고 말았다”고 발터 니그는 말한다. 이런 현실에서 2500년 전, 혼돈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공자가 『춘추』에서 꺼낸 말은..

감상글(책) 2024.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