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550

<에세이> 좋은 삶을 위한 인문학 50계단

권오현 등, 『좋은 삶을 위한 인문학 50계단』, 한티재, 2015. - 『좋은 삶을 위한 인문학 50계단』은 5인의 인문학자가 각 10권씩 권하는 고전 50선에 대한 소개 글이다. 경산신문>에 연재되어 독자의 사랑을 받았던 것을 책으로 엮게 된 것이다. 문학, 역사, 동양철학, 서양철학, 예술을 망라하는 50권 전체를 읽을 수만 있다면 인문 교양과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개인의 생각도 한층 깊어지고 새로워질 것 같은데 한 권 읽는 데도 큰 결심을 해야 하는 입장에선 마음먹기가 쉽지 않은 과제다. 이때 50권의 엑기스 혹은 안내서 역할을 십분 하고 있는 이 한 권을 우선 읽는 것도 괜찮은 선택지로 생각한다.   문학 쪽의 권오현 쌤은 『임꺽정』(홍명희), 『레 미제라블』(빅토르 위고) 등을 ..

감상글(책) 2024.04.26

<소설> 빨치산의 딸

정지아, 『빨치산의 딸』, 실천문학사, 1990. - 정지아 작가의 글은 『천국의 이야기꾼, 권정생』을 먼저 읽었고,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나중에 읽었다. 한참 후에야 두 책의 작가가 동일한 인물이란 걸 알게 된 바 있다. 나라 위해 애쓰는 애국자로 인해 전쟁이 있을 것 같으면 도리어 그런 애국자가 없는 평화가 낫다고까지 역설했던 권정생 선생은 전쟁으로 인해 선량한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걸 누구보다 아파했다. 동화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편들어주는 권정생에게 정지아는 자신의 부모 모습을 보았을 성싶기도 하다. 작가의 부모는 빨치산이다. 아버지는 전남도당조직부부장 출신이고, 어머니는 남부군 정치지도원을 지냈다. 부부는 해방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혼란의 시기에 지리산, 백아산 일대에서, 계급 없이 다 같..

감상글(책) 2024.04.14

<역사소설> 연산의 아들, 이황

강기희, 『연산의 아들, 이황(김팔발의 난)』, 달아실, 2020. 강기희 작가는 오지 마을인 정선 덕산기 계곡에 숲속 책방을 열어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강기희 작가로서는 고향마을로 돌아온 것이며 여기에 아내인 유진아 동화작가가 뜻을 같이해 준 것이다. 텔레비전으로도 몇 번 소개되어 강기희 작가의 소설책 한 권 읽고 가본다는 게 때를 놓쳤다. 작가는 지난여름 유명을 달리했다. 『연산의 아들, 이황(김팔발의 난)』은 『연산』(화남출판사, 2012)을 복간한 것이다. 연산은 광해와 함께 왕으로 재임했으나 실권 이후 끝내 복권되지 못한 왕이다. 그나마 광해는 임진왜란에서의 역할, 실리 외교 등에서 점수를 얻어 상당 부분 재평가가 이루어진 반면에 연산은 폭군의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 그 배경엔 무오사화,..

감상글(책) 2024.03.19

<에세이> 동네 책방 분투기

박태숙 강미, 『동네책방 분투기』, 학이사, 2023. ㅡ『동네책방 분투기』의 저자는 책방지기 박태숙과 소설가 강미다. 두 사람은 울산에서 국어교사로 같이 근무했던 인연이 있다. 경주 외곽이고 울산 북쪽인 산마을에 책방을 낼 궁리를 박태숙 선생이 하게 되자 평소 함께 나눌 문화공간의 꿈을 간직한 강미 선생이 응원을 해온 것이다. 책방 홍보도 겸해서 책방 설계와 진행 또 그 운영 상황까지 공유함으로써 비슷한 일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게끔 하자는 데 두 사람은 의기투합한다. 그 결과로 나온 책이 『동네책방 분투기』다. 책방 이름인 는 책방지기, 카페지기로 역할을 분담한 아내와 남편의 이름을 살려서 호칭한 걸로 보인다. 코로나를 지나며 여섯 해를 이어오고 있는 책방엔 여러 인연들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

감상글(책) 2024.02.19

<에세이> 일흔에 쓴 창업일기

이동림, 『일흔에 쓴 창업일기』, 산아래 시, 2023. -대구 앞산공원 쪽에 은적사가 있고, 그 옆자락에 안일사가 있다. 그 중간쯤 산 아래 남부도서관이 있고 큰길 건너편 카페골목 초입에 시집 전문 책방인 ‘산아래 시’가 있다. 『일흔에 쓴 창업일기』는 책방지기인 저자가 시집 전문 책방을 개업하기까지의 준비 과정과 운영의 묘를 밝히고 그 사이에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간명하게 기록해 놓은 책이다. 왜 하필 시집 전문 책방인가 하는 의문엔, 독자를 만나지 못하는 시집에 대한 안타까움이 시집 전문 책방으로 이어지게 된 거라고 말한다. 차 안에 늘 시집을 갖고 다니고 읽은 시집을 선물하는 평소의 태도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저자는 우연히 읽은 시가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때로 죽비로 내린다고..

감상글(책) 2024.02.16

<산문> 시인의 초상

김영태, 『시인의 초상』, 지혜네, 1998. ㅡ김영태 시인은 시인의 초상을 즐겨 그린 화가이면서 음악과 무용에 깊이 천착하여 춤 평론의 장을 연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시인의 초상』은 시인의 인물 소묘와 함께 시인의 시와 주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연에 따른 김영태 자신의 소회를 덧붙인 대목도 잦다. 자신과 재주가 비슷한 이제하 시인에 대해선 자신은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데 비해서 이제하는 실물을 보고 그걸 기억해서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이제하는 키리코, 뭉크, 프란시스 베이컨의 영향을 받았고 자신은 장 뒤뷔페,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쉴레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이제하는 직장생활이 짧아 자유인에 가까운 것에 비해 자신은 30년 월급쟁이 한 것이 한이다. 김영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가로 독신..

감상글(책) 2024.01.28

<소설> 빨강 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박혜원 역), 『빨강 머리 앤』, 더모든, 2019. - 작가 몽고메리(1874〜1942)는 캐나다 프린스에드워드 섬에서 태어났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외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녀의 『빨강 머리 앤』은 1907년 출간되었다. 소설 속 앤은 부모를 잃고 다른 집을 옮겨 다니다가 고아원에 보내지고, 섬에 사는 매슈와 마릴라 남매에게 입양되어 자란다. 작가 몽고메리가 섬에 돌아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외할머니 일을 도왔듯이 소설 속 앤도 자신의 은인인 매슈가 죽은 후 마릴라 곁에 남기로 결정한다. 몽고메리의 자전적 경험이 소설 속에 상당 부분 반영되었을 것이다. 소싯적 읽었던 기억만 희미하게 갖고 있던 『빨강 머리 앤』을 다시 읽으니 그냥 처음 읽는 느낌이다. 다른 책과 번갈아 보..

감상글(책) 2024.01.15

<그림 산문집> 방방곡곡 사람냄새

김주대, 『방방곡곡 사람냄새』, 시와에세이, 2023. 향숙 김밥, 은주 칼국수. 언젠가 들렀던 가게 이름이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부부가 영업을 같이했을 것이고 가게 이름의 주인이 누구냐고 실없이 물었다가 안주인의 이름을 딴 것이란 얘길 들었다. 지나는 길에 한 번 들른 게 전부인 까닭에 가게의 영업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왠지 친밀감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는 인상을 갖고 있다. 훈기네상회는 김주대 시인이 방방곡곡을 다니다가 만난 슈퍼의 이름이다. 시인의 그림 산문집 『방방곡곡 사람냄새』는 훈기네상회 이야기로 시작된다. 슈퍼 주인인 아버지와 슈퍼 이름의 주인인 아들이 주고받는 말을 재미나게 소개한다. 사탕을 탐내는 아들과 소주를 축내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이야기 끝에 아들은 자랑스러운 아들은 못 돼도 착한 ..

감상글(책) 2024.01.09

<소설> 향수

파트리크 쥐스킨트(강명순 역), 『향수』, 열린책들, 1991. -주인공 그르누이는 파리의 이노셍 묘지 근처에서 태어난다. 사람은 누구나 특유의 냄새를 갖고 있지만 그르누이는 몸에 냄새가 없는 아이이고 이 점이 주위 사람들을 꺼림칙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너도밤나무 장작더미 위에서 나무 향을 자신의 피부 속으로 스미게 해서 스스로 나무가 된 듯한 체험을 하며 그르누이는 냄새를 통해 단어를 알아간다. 냄새로 인지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선 사람과 사물을 놀라울 정도로 구별해내지만 냄새가 없는 추상적인 단어 사용엔 어려움을 겪으며 의사소통을 최소한으로 하는 소년으로 성장해간다. 보모의 손에서 가죽을 다루는 무두장이에게 넘겨졌던 그르누이는 파리의 마레 거리에서 너무나 소유하고픈 사람의 향을 맡게 된다. 그 사람..

감상글(책) 2023.12.29

<에세이> 맹자, 세상을 말하다

송철호, 『맹자, 세상을 말하다』, 학이사, 2023. - 맹자를 읽은 송철호 쌤의 글을 읽는다. 맹자가 강조했던 인의예지(仁義禮智) 중 인과 의에 대한 언급이 많은 편이다. 공자도 맹자도 저자도 사람살이의 기본은 인이라고 여긴다. 저자는 『설문』의 인(仁)에 대한 풀이를 인용하여 두 사람이 나란히 있으며 서로 친하다는 의미로 인(仁)을 받아들인다. 두 이(二)를 위아래의 부모 자식 관계로 새겨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친함으로 타인을 대하는 것이 어진 사람의 자세일 것이다. 하늘과 땅의 관계로 볼 수도 있겠지만 수직적 관계로 보는 건 친함과 거리가 멀다. 저자는 그 친하다는 것을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고 서로 ‘같다’ 또는 ‘같게 하다’는 뜻으로 새긴다. “남과 나를 같게 대하는 것, ..

감상글(책) 2023.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