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724

<산문> 물 긷는 소리

장석남, 『물 긷는 소리』, 해토, 2008. - 페북에 김종삼 시인에 대한 글을 끼적이다가 장석남 시인이 자신의 시 「송학동3 –김종삼 부음」에서 김종삼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헌혈을 한 얘기를 적었더니, 울산의 양 쌤이 시인의 「수묵 정원 3- 물 긷는 사람」도 김종삼의 영향이 있을 수 있겠다고 답글을 준다. 마침 장석남 시인의 산문집에 『물 긷는 소리』가 있음을 우연찮게 접하고 읽는다. 산문집 내용만 따르면 물 긷는 소리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관련이 있다. 섬마을 덕적도 집과 계단으로 마을이 된 인천 송학동의 동향집을 떠올리고 그 시절 새벽이면, “내가 잠자던 방 뒤꼍에 있던 우물에서 숫물 긷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나는 그 성스러운 소리 또한 잊을 수 없다”고 했고 서문에서 부연하기를 그런 물 긷..

감상글(책) 2024.11.10

꽃여울은 강물 따라 / 한명희

꽃여울은 강물 따라 / 한명희 늙은 배롱나무 한 그루병든 제 무릎에여린 뿌리 하나 앉히고 떠나갔다 삼백육십오일불볕에 모진 바람조울증 같은 날씨 버티고 이겨낸 여름날 무성한 잎새가지마다 그리움인 듯그리움인 듯 꽃여울 붉다 어미는 길게 뻗은 가지들 두 해째 새순 돋지 않았어도어린 새순 곁을 지켰다 콘크리트가 주변을 꽉 막아물길이 막혔어도 등 꼿꼿이 펴고빗물 몇 모금 어린 잔가지들에 흘러가도록 등을 토닥였다 아기 나무는 알고 있을까죽은 어미가 뿌리 깊숙이 감춰둔 젖줄을 타고살이 오르고 꽃을 피운 것을  어미가 떠난 자리 딛고 일어나 어미가 되는 것을강물이 강물을 이어 강이 되는 것을  -『참, 미안한 일』, 시와사람, 2024. 감상 – 새순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고목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

감상글(시) 2024.10.29

<소설> 밤 그네

하명희, 『밤 그네』, 교유서가, 2024. -“어두운 비 내려오면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있네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김민기 자작곡, 아름다운 사람> 중  단편 「다정의 순간」에 인용된 김민기 노래의 일부다. 처마 밑에 울고 있는 한 아이를 물끄러미 보며 그 울음을 오래오래 듣는 것이 곧 다정한 마음이겠다. 소설 『밤 그네』에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같이 처마 밑에 울고 있는 아이를 닮았다. 작가 하명희는 그 울음을 다 듣고 울음의 사연을 살펴서 울음을 다독이는 영매의 역할도 십분 해낸다. “오랜 생활 응어리진 마음들을 찬찬히 응시하며 섬세한 언어로 풀어 환한 울음으로 흘려보낸다.”는 책 뒤의 소개말 그대로다. ‘울음’에 굳이 수식어를 써서 ‘환한 울음’으로 표현한 것은 ..

감상글(책) 2024.10.25

눈이 오는 이유 / 김규태

눈이 오는 이유 / 김규태  눈이 오는 이유를 묻거든,떨고 있는 겨울나무들이순백의 잠사옷을 입고 싶어서라고, 눈이 오는 이유를 묻거든,산과 깊은 계곡의 기복을 메워주기 위한 평등주의 때문이라고, 다시 눈이 오는 이유를 묻거든,그늘진 시궁치에 사는 빈자를 위해하느님이 희고 따뜻한 손길을 내린 때문이라고, 그래도 눈이 오는 이유를 묻거든,사악한 자들의 어둔 가슴을 밝히려는흰 꽃의 수많은 등이 되기 위해서라고, 눈이 덮이는 이유, 그것은너와 나의 심저에 싹 트고 있는 맹종의검은 씨앗과 차가운 역사의 들녘을 적시는 표백행위라고, 그러고도 눈이 오는 이유를 되묻는다면,더 대답할 길이 없다.  -『들개의 노래』, 빛남, 1993. 감상 - 김규태 시인(1934〜2016)은 대구에서 나고 부산에서 자랐다. 국제신문 ..

감상글(시) 2024.10.22

<에세이> 만화! 내 사랑

박재동, 『만화! 내 사랑』, 지인, 1994. - 박재동 작가는 1988년부터 1996년까지 한겨레 그림판을 맡아서 신문 판매 부수 확장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던 인기 만화가다. 신문 성향과 보조를 맞춘 진보적 시각을 갖고, 당대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면서도 웃음을 짓게 하는 발군의 솜씨를 뽐냈다.작가가 쓴 『만화! 내 사랑』은 자신이 만화가가 되기에 이른 과정과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만화를 소개하면서 동시에 국내 만화의 역사와 주요 특징을 고찰하며 만화에 대한 상식을 한껏 키울 수 있도록 해준다.박재동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울산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온다. 교편을 잡았다가 몸이 편찮아서 그만둔 아버지는 ‘문예당’이란 만화가게를 인수하셨고, 어머니는 그 가게에서 팥빙수와 풀빵을 파셨다. 아버지는 가게 책..

감상글(책) 2024.10.13

<산문> 소란

박연준, 『소란』, 난다, 2020. / 북노마드, 2014.  저자인 박연준 시인은 이십 대 중후반을 지날 때 고흐의 슬픔>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때로 작품 속 시엔과 비슷한 포즈를 취하며 자신의 슬픔 속에 있기도 한다. 때로 정도가 심하면 ‘슬픔이 활활 타오르는 죽은 나무’와도 같았다는데 시인 스스로의 처방은 “슬픔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슬픔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은 슬픔에 젖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는 것이었다. 독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독이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여덟 번 반복하는 윤동주의 「팔복(八福)」(1940)을 접하고 시인은 슬픔이 복으로 연결되는 것에 위안을 받는다. 고흐의 슬픔>(1882)이나 윤동주의 「팔복」을 받아들이는 시인..

감상글(책) 2024.10.03

<에세이> 오늘은 너의 애인이 되어줄게

오늘 펴고 있는 『오늘은 너의 애인이 되어줄게』의 표지 그림은 처음에는 구름인 줄 았았더니 오딜론 르동의 베아트리체>다. 베아트리체를 그린 또 다른 그림도 보인다.  최희정, 『오늘은 너의 애인이 되어줄게』, 구름의시간, 2024. - 저자는 요양병원 간호사로 일한다. 결혼과 함께 그만둔 일을 재취업 교육을 받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재취업 성공 사례 수기로 최우수상도 받았다. 글 쓰고 사는 삶에 대한 동경을 간직하고 살던 저자에겐 상당한 의미를 가진 상이었을 것이다. 생중계되었던 시상식 영상을 찾아서 수상의 기쁨을 어머니와 나누며 어머니에게 진 오랜 빚도 청산한다. 어머니에게 진 빚은 키워준 대가로 자발적으로 써준 차용증에 적힌 오천만 원이다. 그 빚은 내내 못 갚고 살다가 30년 더 지나서 본인이 받은..

감상글(책) 2024.09.25

<에세이> 동해 하얀 파도를 따라

이성교, 『동해 하얀 파도를 따라』, 창조문예사, 2006. - 이성교 시인(1932-2021)은 강원도 삼척 출신이며 강릉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하숙집을 시골집을 얻으면서 그곳의 주인인 왕산골 어머니를 수양어머니로 여기며 평생 따르고 인사하는 인간미를 육명심 사진작가가 『문인의 초상』에 언급한 바 있다. 그때 육명심 작가가 읽은 책이 『동해 하얀 파도를 따라』다. 수필집에 따르면, 이성교 시인은 중학생 신분으로 6.25를 겪는다. 방위군으로 징집되었다가 시인은 장질부사에 걸리고 식구들에게 차례로 옮긴 병마는 어머니 목숨마저 앗아간다. 그때 피난 가던 길에 집에 얹혀살던 처녀 복순이는 어머니 병간호로 살아남아 아랫집 남자와 결혼해서 살면서 시인을 만나 옛 추억에 잠길 때도 있다. 시인은 고..

감상글(책) 2024.09.20

<사진 에세이> 문인의 초상

육명심, 『문인의 초상』, 열음사, 2007.- 『문인의 초상』은 사진작가 육명심의 문인 초상 사진에 짧은 글을 곁들인 사진 에세이다. 30여 년 출간을 벼르던 책인 만큼 1970년을 전후한 사진이 많다. 문인을 사진에 담되 어느 순간부터 예술가의 옷을 벗긴 인간으로서의 체취와 숨결을 담게 되더라는 서문의 글이 눈에 띈다.민영 시인 편을 보니. 강원도 철원 출생인 민영은 아버지 따라 만주 간도로 이사를 갔다가 서울 명동에서 담배장사를 하고 남대문 시장 어물 가게의 점원으로 일하기도 했단다. 민영은 부산 피난지에서 땅콩장사를 하다가 인쇄소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서울에서 인쇄소 조판기술자가 되었다. 그런 다음 출판사 편집자, 잡지사 기자가 되어 부지런히 일하는 중에 독서도 하고 시도 썼다면서, “인생의 이..

감상글(책) 2024.09.20

복지과 가는 길 / 이명윤

복지과 가는 길 / 이명윤 복도를 걷는데 등 뒤에서달그락달그락 운다구두 뒷굽의 구멍이 돌을 삼킨 것노인이 걸음을 뗄 때마다 어느 날구두를 찾아온 슬픔이 말을 거는 것이다이 건물엔 복지과가 없다는 말은도무지 들은 체 않고 달그락달그락,풀 한 포기 없는 복도를 따라오며연신 중얼중얼거린다 먼 나라 어느 부족의 주문 같은중얼중얼, 바람이 불 때마다어디선가 노인의 가슴이 삼킨 돌들이정신없이 말을 거는 것이다 달그락달그락 쯤이야 거꾸로 뒤집어탁탁 치고 그래도 안 되면쿠폰 한 장으로 조용할 수 있겠지만중얼중얼은 어떻게 하지 달그락달그락, 중얼중얼,말을 탄 노인이 쉬지 않고 황야를 달린다 분명 이 세계 어디엔가태양처럼 떠 있을, 복지과를 찾아서 - 『이것은 농담에 가깝습니다』, 걷는사람, 2024.  감상 – 노인을 ..

감상글(시) 2024.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