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버릇 / 심수자 뚫어놓은 수챗구멍에서 느닷없이 고개 내민 쥐가 웃는다 아차, 지난겨울 잊고 있었던 윗목 고구마 자루를 여니스르르 끌려 나오는 반세기 전 기억 하나젖이 모자라 낑낑대던 세 살박이 막내는 한밤중 캄캄한 어둠 속에서고구마 양손으로 잡고 생쥐처럼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그때 벗겨 낸 껍질은 흩어지는 마른 울음 같아서얼굴 늙어 가며 듬성듬성 생겨난 검버섯주렁주렁 고구마 매단 넝쿨이 당겨져서언니 언니 나를 부른다 일찍이 본능의 씨눈을 삼킨 아이는철든 후에도 자주 손톱을 물어뜯고 하였다 가늠 되지 않던 생의 골짜기에서도 이빨만큼은 언제나 빛났다빠져나가라고 뚫은 수챗구멍에서내 눈으로 건너온 쥐는 앞니 유난히 하얀 소설이 되어갸우뚱 엿보던 나의 비밀을 갉고 있다 - 『술뿔』, 책나무, 2014. 감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