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 7

<산문> 석재 서병오 필묵에 정을 담다

이인숙, 『석재 서병오 필묵에 정을 담다』, 중문출판사, 2018. - 시서화 세 분야에서 최고 경지까지 보여준 서병오(1862∼1935)에 대한 글이다. 책 내용 중 서병오에 대해 궁금증이 있었던 부분 위주로 메모를 새로 해본다. 서병오의 글 스승은 허훈과 곽종석이다. 허훈의 막내동생은 의병장 허위이고 서병오는 관헌에 쫓기는 허위를 숨겨준 인연이 있다. 곽종석은 파리장서 사건을 주도했던 독립운동가다. 또 그림과 글씨로 서병오에게 영향을 준 이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다. 이하응으로부터 석재(石齋)란 호도 받는다. 이하응의 스승인 김정희의 영향도 받는다. 서병오는 김정희가 강조했던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의 인문학적 소양을 체득해간다. 김정희 글씨가 많이 남아있는 영천 은해사와 울산 통도사에 서병..

감상글(책) 2025.02.20

<소설> 공장신문/처를 때리고/ 질소비료공장

『공장신문/처를 때리고(김남천), 질소비료공장(이북명)』, 한국헤르만헤세  -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는 논술대비 한국문학이란 표제를 달긴 했지만 사회주의 계열의 작가로 분류되는 두 작가의 작품을 출판 목록에 포함시킨 것은 평가할 만하다. 김남천의 『처를 때리고』(1937)는 출판 사업을 꿈꾸는 식민지 지식인의 이중적 태도를 잘 포착해낸 작품이다. 나머지 두 작품은 1930년 초 노동운동을 다루고 있다. 김남천(1911-1953)은 평양 성천 출신으로 평양고보를 졸업한 일본 유학파다.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임화와 함께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와 조선문학가동맹의 주요 인물로 활동한다. 김남천은 『공장신문』(1931)의 배경이기도 한 평양고무공장 파업을 지지하고 선전하는 일로 감옥에 복역하게도 되..

감상글(책) 2025.02.16

퍼펙트 데이즈

퍼펙트 데이즈>(빔 벤더스 감독, 2024)  주변이 늘 평화롭기를 빌지만 세상일은 그렇지 않고, 당신과 나도 평화롭지 않을 때가 많은 줄 안다. 어제만 해도 좋은 일도 있었고, 걱정스런 일도 있었다. 좋은 일도 계속 좋을 리 없고, 걱정스런 일도 매양 한가지는 아닌 줄 안다. 어제는 정월대보름이기도 했다. 달님께 소원 비는 것도 잊고, 닭똥집 앞에 두고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았다.   화장실 청소원인 주인공 남자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있다. 일뿐만 아니라 출퇴근 시간 음악 듣기, 단풍나무 화분에 물 주기, 자신이 점찍은 나무우듬지 사진 찍기, 자기 전에 책 읽기 등 남자가 보여주는 나름의 취미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일이든 취미든 반복이긴 하되 그 안에도 변화가 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

감상글(영화) 2025.02.13

<산문> 시인이 되어 나귀를 타고

김춘수, 『시인이 되어 나귀를 타고』, 문장사, 1980.  - 신문연재를 모은 산문 책머리에 적기를, 산업화 사회에서 “도덕의 파괴와 도덕감각 및 도덕적 상상력의 둔화는 인간을 내부로부터 헐어버리는 요소”라고 했으며, 이러한 일에 대한 관심으로 시인은 산문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시인의 시편에 비해서 산문은 한층 친절하다. 부지런하다는 것과 바쁘다는 것>을 읽어본다. 바쁘다(忙)는 것은 마음을 어디다 두고 온 상태라서 편치 않아 보이고 불안해 보인다고 했다. 바쁘게 해서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삶에 대한 궁극의 목적은 있지만, “그 목적은 달성되지 않고 수단인 바쁘다고만 하는 어떤 상태의 포로가 되기만 한다”고 했다. 부지런다는 것은 좀 다르단다. 『벽암록』의 덕운(德雲) 일화를 예로 들며 치성인(癡..

감상글(책) 2025.02.12

<소설> 오순정은 오늘도

김양미, 『오순정은 오늘도』, 학이사, 2024.   책 뒤편 ‘작가의 말’을 읽으면, “그냥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냥 살아지는 건 아닌, 삶의 고단함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는 대목이 보인다. 그런 생각이 소설로 결실한 것인 양, 작가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혹은 주변 인물들은 대개 단내 폭폭 풍기는 고단한 삶을 살아간다.   오순정 가족의 이야기도 그렇다. 곱창집 주인 최미숙과 곱창집 직원 오순정은 어려운 형편에 악착같이 일하며 살았다. 다만, 현재와 노후 형편은 꽤 차이가 날 것으로 짐작이 된다. 최미숙은 교회를 열심히 다녀서 복을 받은 것으로 얘기하지만 오순정은 그 차이를 직감하고 있다. 무리해서라도 돈을 빚내서 집을 사고 집값이 두 배 이상 올라서 여유를 얻은 쪽과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치고 ..

감상글(책) 2025.02.09

<산문> 대전 충남 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김현정, 『대전 충남 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심지, 2013.   대구 경북의 문인 예술가들의 삶을 조명했던 『씨 뿌린 사람들』(백기만, 1959)로 인해 현진건, 이상화, 이장희, 이육사, 오일도, 백신애, 박태원(작곡가), 김유영(영화감독), 이인성(화가), 김용조(화가)의 삶과 예술이 어떠했는지 그 세부까지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고 이후 더 이들에 관심을 갖는 계기도 된 걸로 이해하고 있다. 서울 중심의 중앙 활동에 가리어 자칫 소외되기 쉬운 지역의 문학예술 활동을 공부하고 답사하고 정리하는 일은 퍽 소중해 보인다. 이번에 읽은 『대전 충남 문학의 향기를 찾아서』도 그러하다. 지역의 땅을 딛고 향기를 맡으며 자란 씨앗은 지역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예술이란 거목이 되어 풍성함을 드리울 것인데 그 흔적..

감상글(책) 2025.02.04

<소설> 빨간 풍차가 있는 집

장정옥, 『빨간 풍차가 있는 집』, 부카, 2023.  소설 중 표제작을 다시 훑어본다. 빨간 풍차에서 파리의 물랭 루즈가 우선 떠오른다. 물랭 루즈 하면 파리 몽마르트와 로트레크가 생각나는 정도가 나의 상식이다. 물랭 드 라 갈레트(Moulin de la Galette)와 헷갈렸던 기억을 더듬어 정리해보면, 르누아르가 그린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1876)와 고흐가 1886년부터 두 해 동안 여러 점 그린 물랭 드 라 갈레트>는 몽마르트 언덕 위 방앗간으로부터 유래한다. 방앗간에서 갈레트(빵)와 음료를 팔던 것이 술집과 무도회장을 겸한 카바레로 이어지고, 이후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을 장소를 옮겨 현재까지 식당으로 영업중이란다. ‘물랭 드 라 갈레트’와 달리 몽마르트 언덕 아래에 위치한 ‘물랭 ..

감상글(책) 2025.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