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아래서 느티나무 아래서 /이동훈 가을이면 느티나무가 좋았다.... 두 해 전 말라죽기 직전 막걸리 대여섯 동이 빨아들이고 살아났다는 느티나무였다. 그리고는 나이를 거꾸로 먹기 시작했다. 바스라진 껍질을 떨어뜨리고 미끈한 맨살을 내놓으며 갈수록 참해지고 야해지다가 드디어 앞잎이 붉게.. <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2016.06.09
육개장 유감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jaeun5410/116 육개장 유감 / 이동훈 김 서린 비닐봉지를 넘겨받으며, 차림표의 육계장은 육개장이 맞다고 정중하게 건방 떨고 집에 와서 냄비에 국을 풀어놓으니 아버지 흠흠거리며 혹, 개장국 아니냐고 물어온다. 개장은 개장이지만 개 아닌 개장이라고 부연 설.. <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2015.08.03
창림사지 삼층석탑 창림사지 삼층석탑* / 이동훈 어떤 주문을 외어야 몸돌의 쌍바라지를 열 수 있을까. 저 문 안에 들면 높아도 높바람 없고 누워도 윗바람 없는 고루고루 뜨스운 세계가 내밀하게 마련되어 있으리. 아직 계약하지 못한 날의 밥을 위해 ―열려라 밥! 주문을 걸어볼까. 바닥이 쉬 보이는 뚜껑.. <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2014.12.19
무장사지 가는 길 경주 무장사지 가는 길(2012) 무장사지 가는 길 / 이동훈 무기를 묻었다는 무장사지* 가는 길 그대는 뒤로 처지고 나는 그대를 기다렸다가 다시 앞서간다. 사이가 한참 떠서 기다림이 길어질 무렵 그대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고 남은 길을 혼자 올라간다. 개울물 여러 차례 지나며 손 한.. <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2014.12.13
파란 꽃 전준엽, 빛의 정원에서, 2010 파란 꽃 / 이동훈 버럭 성을 내지 않았을 뿐 좁은 이마에 그려지는 얕은 소가지를 속일 순 없다. 저만치 놀던 아이가 서랍장 손잡이까지 뗄 건 뭐람. 신경은 나무껍질 일어나듯 하고 얼굴은 더욱 구겨졌겠다. 아이는 쥐걸음으로 물러나고 에멜무지로 조인 나사.. <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2014.10.12
풍사실(豐士室) 풍사실 탁본(제주 추사관에서) 풍사실(豐士室) / 이동훈 울타리 위로 웃자란 가시 분지르고 반가운 기별이 있을까. 모슬포 항으로 목을 빼고 다시 한나절 산방산 쪽으로 돌아설 때면 속울음도 노을처럼 붉지 않았겠냐. 그 적거지에 오니 풍사실(豐士室)*이 이채롭다. 士는 안 그래.. <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2014.09.10
무서운 이야기 몽우 조셉 킴 , <독수리> -그림 출처: http://blog.naver.com/ahddnwhtpqzl 무서운 이야기 / 이동훈 보일러 끓는 소리 따라 이야기도 슬렁슬렁 풀어진다. 몸이 아프면 귀신이 든다고 하잖아. 내가 그 꼴인 게야. 오줌을 늦게 가렸어도 무탈하기만 했는데 덜컥 저승길이 보인 거야. 요즘 같으면 병.. <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2014.08.24
눈 그늘 장욱진(1990), <닭과 아이> 눈 그늘 / 이동훈 베개만 한 녀석이 베개 위에 엎어져 잠이 들면 어떤 별세상으로 빠져드는지 눈 그늘이 깊다. 장난감 잡은 손을 풀지 않는 녀석처럼 내 유년의 고집도 그랬을까. 땅강아지를 손가락으로 누르거나 개미를 팔뚝으로 조이다가 된통 물려 따끔거.. <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2014.07.19
개를 위한 변명 개나리 (노숙자 作) , 그림 출처: http://blog.daum.net/oyo1119/1065 개를 위한 변명/ 이동훈 먹지 못하면 개꽃, 반반치 못하면 개떡, 시원찮으면 개꿈이다. 어엿한 새끼도 개를 앞에 두어 욕을 보인다. 남의 족보를 허락 없이 가져가서 개망신 주는 꼴이니 개로서는 어처구니없다 할밖에. 굴러먹다 .. <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2014.06.22
씨 뿌리다 빈센트 반 고흐, <씨 뿌리는 사람> 1888. 씨 뿌리다 / 이동훈 민들레 씨나 졸참나무 씨나 우리 동네 김 씨나 씨의 족속이긴 마찬가지인데 민들레 씨는 새가 먹고 졸참나무 씨는 다람쥐가 먹고 동네 김 씨는 혼자 먹는다. 먹고 싼 것이 또 씨가 되어 씨로 열매 맺고 씨로 나누어 먹고 씨로 .. <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2014.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