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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방울 슈퍼 이야기

황종권, 『방울 슈퍼 이야기』, 걷는사람, 2023. - 『방울 슈퍼 이야기』는 황종권 시인의 재미나는 에세이집이다. 방울 슈퍼는 시인의 어머니가 여수에서 운영하던 가게 이름이고, 가게에 딸린 방 한 칸에서 식구가 살았다고 한다. 시인은 집안 문제로 할머니 댁에서 맡겨져 자라기도 했는데 이번 에세이집에서 방울 슈퍼를 중심으로 시인의 유년 시절 기억이 다수 소환된다. 방울 슈퍼의 주인아주머니인 어머니는 슈퍼 금고를 도둑맞고 눈물을 보이면서도 남을 의심하는 일을 꺼렸다. 아들에게 주변을 챙기는 사람이 되라는 주문도 수시로 한다. 여행지에서 남이 버리고 간 오물을 줍는 것으로 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의 적잖은 부분은 어머니에 대한 헌사이기도 한데 특히, 아들의 중학교 선생이자 ..

감상글(책) 2023.07.17

카우보이의 노래

, 코엔 형제(에단 코엔 /조엘 코엔) 감독, 2018. 여섯 편의 중단편이 실린 책 한 권의 표지 장식 그림은 반쯤 살고 반쯤 죽은 듯한 고목이다. 책 제목은 『The Ballad of Buster Scruggs』다. 이 책을 읽어 주는 장면을 시작으로 영화는 각각의 에피소드를 전개한다. 영화는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었고 『The Ballad of Buster Scruggs』의 목차 하나하나가 영화 소제목이 되는 식이다. 목차를 옮겨 적는다. 1. The Ballad of Buster Scruggs 버스터 스크럭스(카우보이 이름)의 노래 2. Near Algodones 알고도네스 인근 3. Meal Ticket 밥줄 4. All Gold Canyon 금빛 협곡 5. The Gal Who Got R..

감상글(영화) 2023.07.17

해당화 향기 / 임미리

해당화 향기 / 임미리 그림자도 숨어버린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바람을 찾아 나선 선정암 입구에 들어서니 코끝을 자극하는 향기 진동하네. 두리번거리다 마주친 해당화 한 무더기 척박한 모래땅 바닷가에서만 꽃 피는 줄 알았는데 정인을 만난 듯 반갑게 마주앉네. 산사의 바람에 얼마나 흔들렸을까. 붉은 꽃잎이 더욱더 애잔해 보이는데 그리운 이를 기다리는 듯 강인하게 피었네. 산 넘고 바다 건너 먼 곳까지 아련한 향기 한 줌이라도 보내려했을까. 붉은 꽃잎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그늘이 보이네. 푸른 가시로 버텨낸 세월이 얼마였을까. 보는 이의 아련함 깊어 가는데 바람결에도 모른 척 잠이 드는 해당화 내일쯤이면 찾아올 그리운 이의 발치에서 더욱더 붉게 피어날 꽃잎 무더기 향기로운 몸짓이 산사를 흔들어 깨우네. -『물..

감상글(시) 2023.07.12

유령놀이 / 나문석

유령놀이 / 나문석 극락강을 건너온 눈바람이 온 누리 하얗게 칠하는데 창가에 선 백발의 어머니, 밤새도록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다린다 누워서 기다려도 오신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다 지나가는 기차소리에 놀란 눈으로 통근열차 놓치면 작업반장한테 혼난다고 안달하는 어머니 도시락 가방을 챙겨 들고 기어이 방문을 나서려고 한다. 동이 트려는지 창밖이 밝아지기 시작하는데 태어나기도 전의 날들이 굵은 눈발이 되어 허공을 가득 채우고 울 엄니 내일 아침에 시집간다고 새색시 화장을 시작한다 * 영산강과 황룡강의 분기점에서부터 광주천이 나누어지는 지점까지를 극락강이라 부른다. -『정삼각형 가족』, 시와에세이, 2014. 감상 – 시인의 아버지 나경일 선생은 제일모직 노조 설립과 운영에 애쓰다가 고초를 겪었던 노동자이자 노동 ..

감상글(시) 2023.07.06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창비, 2022. -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실제 빨치산 출신이다. 1990년 출간되었다가 판매 금치 처분을 당하기도 했던, 작가의 『빨치산의 딸』(1990)을 읽으면 두 분의 생각과 삶이 어떠했는지 혁명이 좌절된 반공사회에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나 순서를 달리해서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먼저 읽게 된다. 작가 나이 스물다섯에 쓴 『빨치산의 딸』은 부모의 증언이 토대가 되었던 소설이지만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그로부터 30여년이 더 지나서 작가의 시선이 전보다 많이 투영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전작을 읽지 않으니 표현이 애매해진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장례식장 풍경이 이 소설의 중심축이며 여기에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들이 평..

감상글(책) 2023.07.01

소한 / 도경회

소한 / 도경회 녹내장에 걸린 저수지 살얼음 반 너머 깔린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따뜻한 운석 얼음에 쩡 금이 간다 밤 깊을수록 하늘 팽팽해지고 풍덩 풍 잔 메아리 일구며 돌 떨어지는 소리 잦다 물이 가슴 뚫리면서 너울에 솔개바람 인다 목숨의 둘레를 돌려가며 갑옷 구멍처럼 홀쳐서 찢어지지 않게 깁고 있다 무리를 이끄느라 피멍 든 죽지 세상 후미진 밑바닥 훑어서 밥 벌어오던 아버지 -『데카브리스트의 편지』, 우리시움, 2022. 감상 – 24절기 중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은 마지막에 놓이며 이름에서 보듯 가장 추운 날에 해당한다. 북쪽의 작은 저수지라면 꽝꽝 얼 때가 많지만 남녘의 저수지도 영하의 날씨에 살얼음 끼는 건 종종 보게 되는 일이다. 살얼음은 그리 단단한 얼음은 못 되는 것인데 운석이 자꾸 부딪..

감상글(시) 2023.06.27

<산문> 득량, 어디에도 없는

양승언, 『득량, 어디에도 없는』, 글을낳는집, 2023. - 작가는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평생 화두로 품고 지낸다. 근래 2년여를 머물며 이곳이야말로 최적의 고장이라고 얘기하고 책으로 엮게 된 곳이 바로 남도의 장흥, 보성, 고흥으로 이어지는 득량이다. 작가가 인연이 되어 머문 곳은 보성 일림산 정씨고택과 삼의당이다. 보성과 득량만에 대한 작가의 사랑은 지극하다. “보성 지역을 간략하면 동벌서포라고 할 수 있다. 동쪽에 벌교가 있고 서쪽에 율포가 있다는 뜻이다...또 다른 표현으로 옮기자면 동꼬서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동쪽 벌교는 꼬막이, 서쪽 율포는 낙지가 대표적 먹거리라는 의미다”. 해산천야(海山天野) 즉, 바다와 산과 들판과 하늘을 고루 갖춘 “천혜의 땅은 대한민국 남..

감상글(책) 2023.06.25

모듬살이 / 김병해

모듬살이 / 김병해 올해도 마당귀 들꽃 더미 여럿 담뿍 어름더듬 곁을 넓혀 무람없이 들어앉는다 해마다 들이미는 해사한 낮은 호명 들며 나며 눈인사만 멀찍 건넸댔는데 여러 해 어깨맞춤하며 마주하다 보니 꽃문 여닫는 시기며, 본곶은 어디인 것 하며 새새틈틈 드는 길손, 바다 구름 벌 나비랑도 살가운 안면 트는 막연지간이다 싶어 입때껏 너나들이하며 두루뭉술 한집살이 맹랑한 무단잠입 내내 눈감아 줬더니 글쎄나 그새 거푸 슬하 식솔 여럿 불려 흔전만전 붙박이로 눌러앉을 모양이네 이참 만부득이 집세 솔찬히 받아낼까 보다 얼추 어림셈해도 곳간 꽤나 두둑하겠네 허나 어쩌랴, 나 또한 저들과 어금지금 이곳 별 잠시 들른 무전취식 모듬살이인 것을 -『오늘은 너에게로 진다』, 문학의전당, 2023. 감상 – 시인의 집 마당..

감상글(시) 2023.06.18

<에세이> 숲에서 한나절

남영화, 『숲에서 한나절』, 남해의봄날, 2020. - 숲 해설사이기도 한 작가는 자연을 친구로 두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한다. 자연은 발견의 기쁨을 주며 주변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주고 아름다움에 눈뜨게 해준다. 자연이란 친구를 다른 사람에게도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쓴다고도 했다. 작가는 꽃다지의 로제트에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다. 로제트는 뿌리잎이 땅에 바짝 붙어 방사형으로 자라는 식물이다. 방사형은 중심이 되는 한 점에서 거미줄이나 바큇살처럼 뻗어 나간 모양을 일컫는데 냉이, 달맞이꽃, 민들레, 지칭개, 꽃마리, 개망초 등이 로제트 형이다. 로제트 형 식물은 꽃대를 밀어올리고 성장하면서 “아래쪽 잎과 줄기에 햇빛이 잘 들게 하기 위한 생태적 선택”을 통해서 원래의 모습을 바꾸어 간단다. ..

감상글(책) 2023.06.16

연백촌가 / 조지훈

연백촌가(延白村家) / 조지훈 수숫대 늘어선 밭뚝길로 몰아 놓은 트럭은 배추밭 머리를 돌아 울타리 뒷길을 돌아 어느 촌가집 마당에 멈춘다. 젊은 중위가 뛰어내려 어머니를 부르니 뜻아닌 목소리에 가족이 몰려나와 서로 껴안고 울음 반 웃음 반 어쩔 줄을 모른다. 알고 보니 이 중위는 사년 전에 달아난 이 고장 젊은이 때 묻은 융의(戎衣)를 입고 와도 금의환향이 이 아니냐. 한잠 든 닭을 잡아 모가지를 비틀고 둘러앉아 한 그릇씩 국수 잔치가 푸지다. 내 뜻 아니한 이 촌가에 와 그 즐거움을 함께하노니 반가운 손이 되어 아랫목에 앉아 웃는 인연이여 흐린 하늘에서 달빛이 다시 나온다 평양 가는 트럭에 뛰어오르니 밤은 삼경! 사랑하는 자식을 하룻밤이나마 못 재워 보내서 안타까운 그 어머니를 생각한다. 아 우리나라 ..

감상글(시) 2023.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