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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도시독법

로버트 파우저, 『도시독법』, 혜화1117, 2024.  저자의 고향은 미시간 대학이 있는 앤아버다. 저자는 앤아버를 사랑하는 마음과 벗어나고픈 충동을 함께 가지고 있었고, 얼핏 후자의 동력이 강해서 저자를 도쿄, 서울, 대전, 교토, 더블린, 뉴욕, 라스베이거스 등으로 주거를 옮겨 살게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연 있는 도시를 사랑하는 전자의 힘도 상당한 수준 그 이상이다. 하나하나의 도시를 깊이 느끼고 길을 걷고 그 도시의 속과 징후를 살펴서 책을 내는 것으로 도시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가 앤아버를 떠나 있는 동안 점차 보수화된 도시가 권력에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에 저자는 못마땅해 한다. 그런 중에 2018년 앤아버는 중요한 결정 하나를 내린다. 시 소유 주차장 부..

감상글(책) 2024.09.14

살포시 아는 집 / 강미정

살포시 아는 집 / 강미정 살얼음이 붙잡은 징검돌을 건너야 갈 수 있는 집이 있었다살포시 아는 집이었는데추운 뜰에서 종일 기다려도 섭섭지 않았다집 안으로 들려면 울타리인 탱자나무 가시를 건너야 했다가시 사이 쭈글쭈글 말라서 단단해진 탱자 열매의 고신한 적막도 건너야 했다하루를 묵으면 빛 들지 않은 묵은내가 저 기억 끝에서부터 몰려왔다추운 생각들로 온몸을 떨어야 했다밤새도록 쪼그리고 앉아 조는 어린 나의 몸을 건너야 했다우린 살포시 아는 사이야,수십 년을 건넌 안면인 내게 처음 했던 말을살포시 하곤 했다벽이 흐려지고 문풍지 떠는 소리가 선명해지기도 했다나에게서 벽이었던 사람조차도때론 나를 견디게 한 힘이었음을,나에게서조차 나는 살포시 아는 사이였음을 왜 몰랐을까,혼자 엎드려 젖은 발을 감싸고 있는살포시 아..

감상글(시) 2024.08.27

<산문> 평안도 이야기

김남일, 『평안도 이야기』, 학고재, 2023. - 서울 문학기행이든 남도 문학기행이든 섬 기행이든 지역과 관련된 문학 이야기는 많은 책 중에 골라서 봐야 할 형편이지만 오가는 길이 막힌 북한 쪽의 문학 기행은 흔치 않다. 그런 중에 근대 문학 중심의 『평안도 이야기』를 반기며 읽었다. 저자의 꿈은 “함경선 기차를 타고 북상하면 띄엄띄엄 정거장마다 나와 이제나저제나 하고 어리숭한 후배 작가를 기다리고 있을 한설야, 이북명, 안수길, 김기림, 최서해, 김광섭, 현경준, 최정희, 이용악 같은 선배 작가들을 만나고, 또 문산에서 끊어진 경의선 철도를 이어나가면 마침내 평양은 물론이고 성천, 개천, 정주, 삭주, 구성, 희천, 강계, 초산, 벽동, 의주 따위 이름조차 낯설고 그래서 더 아름다운 고장들을 두루 ..

감상글(책) 2024.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