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550

<전기> 천년의 화가 - 김홍도

이충렬, 『천년의 화가 – 김홍도』, 메디치, 2019. - 『간송 전형필』을 쓴 전기 작가 이충렬이 그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김홍도를 얘기한다. 중인 출신인 김홍도가 안산 단원(檀園-박달나무숲)에 머물렀던 양반 출신 강세황으로부터 그림을 배울 수 있었던 사연, 그 인연으로 인해 자신의 호를 단원으로 쓰고 싶었던 마음, 평생의 벗인 이인문과 제자로 받아들인 박유성과의 인연, 세 번이나 어진화사(임금 초상화를 그린 화가)가 되었지만 말년까지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모습 등이 김홍도의 그림과 함께 흥미롭게 이어진다. 작가는 제화시에 나오는 ‘금성동반(錦城東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바탕으로 김홍도의 집을 인왕산 백운동천 계곡으로 특정한다. 단원이란 당호를 고민하던 시절의 풍경이다. 그림 속 오동나..

감상글(책) 2021.05.09

<에세이> 일하는 예술가들

강석경, 『일하는 예술가들』, 열화당, 1986. 일하는 예술가. 그러니 예술도 노동이다. 예술가들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한 강석경 작가의 노동으로 책이 나올 무렵, 박생광 화가, 김종삼 시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2021년 현재, 장욱진, 황병기, 김중업, 유영국, 김월하, 이매방, 윤경열, 문신, 백성희도 타계했다. 조각가 문신에 대해선, 창원 지나는 길에 문신 박물관 표지를 몇 차례 보고도 들어가 보지 못했던 전과를 생각하여 우선적으로 보았다. 문신은 일본 규슈 탄광, 조선인 노동자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생활을 위해 일본과 마산을 오갔으며 형편이 안 될 때는 문신은 가족과 따로 지내기도 했다. 문신은 열네 살 때 신문에 난 피카소 데생을 보고 습작을 한다. 강..

감상글(책) 2021.04.22

<에세이> 차 한 잔의 시상

모윤숙 외, 『차 한 잔의 시상(詩想)』, 태창, 1978. - 시인 16명이 쓴 시가 있는 산문집이다. 제일 앞장은 1910년생 모윤숙 시인이다. 모윤숙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1951)로 널리 알려졌지만, 학도병 참전을 독려했던 친일 경력을 비판받고 있다. 생사를 오가는 시대의 부침이 모윤숙의 삶을 관통했으나 선택에 따른 명과 암은 자신의 몫으로 남아있다. 고향 마을 원산항의 명사십리를 두고 “가고 싶어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명사십리, 그 물이 왜 이리도 모질게 내 클클한 가슴을 잡아당기고 있을까? 마음은 구름을 탄다”고 말하는 모윤숙의 감성은 아주 서정적이다. 원산항 가는 길을 마저 옮기면, “서울을 지나 옛날 그때처럼 청량리를 통과하는 경원선을 지난다. 삼방, 검불랑, 석왕사를 지나면 파란 ..

감상글(책) 2021.03.27

<에세이> 음악을 찾아서

이순열, 음악을 찾아서, 삼민사, 1979 『책꽂이 투쟁기』의 김흥식이 『음악을 찾아서』(이순열)를 책꽂이에 귀하게 모셔둔 정도만 기억하고 있다가 구례 ‘섬진강 책 사랑방’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공교롭게 이순열의 고향이 구례란 것도 신기하다. 이순열의 음악 사랑은 유난하다. 어렸을 때의 꿈이 세상을 음악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 음악은 “일상성에 갇혀 질식하는 우리의 넋을 해방시켜 아름다운, 참으로 아름다운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며, “우리의 메마른 정서에 단비를 뿌려 푸르름이 풍요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순열은 바흐나 모차르트를 좋아한다. 바흐에 대한 전기와 함께 슈바이처나 베토벤의 평을 옮기면서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 거대한 음악의 숲속으로 몰입되는 경험을 하게..

감상글(책) 2021.03.21

<소설> 부론강

이인휘, 『부론강』, 목선재, 2020. 내게 부론은 거돈사지로 기억된다. 조용미 시인은 거돈사지를 천년 된 느티나무의 성지로 보았으며, “그 폐허의 비밀을 읽다 돌아간 사람들의 눈빛은 얼마간 / 갈라진 삼층석탑과 석축을 뚫고 뿌리 뻗은 저 느티나무나 /쓰러진 당간지주를 닮아 있으리라”(「느티나무의 몸속에는」)고 노래했다. 오래전 이 시를 읽고 거돈사지와 법천사지를 가지 않을 수 없었고, 그때의 눈빛을 스스로 잴 순 없는 일이나 조용미 시인이 옳았다고 지금껏 여기고 있다. 이번 『부론강』은 바깥세상에서 부론으로 찾아들고 이곳에 정착하여 자신의 삶을 가꾸어 가는 사람들 얘기다. 이들은 지역 시장에 참여하여 공생을 도모하고, 달집 태우기 등 공동체 문화 복원에도 애를 쓰는 사람들이다. 이 소설은 사진을 찍었..

감상글(책) 2021.03.17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 현암사, 2013. - 나쓰메 소세키는 어릴 적 양자로 입양되었다가 양부의 죽음 후 열 살 무렵 생가로 돌아오고, 스무 살이 지나서야 나쓰메라는 성을 찾는다. 소설 속 고양이 주인으로 나오는 구샤미 선생은 위장병을 앓고 신경증도 있는데 나쓰메 소세키의 실제 모습과 유사하다는 평이다. 출세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집에 든 검은 고양이를 내쫓지 않고 아내와 함께 키우면서 생긴 경험이 바탕이 되었기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나쓰메 소세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물론 소설에 무수하게 인용되어 있는 독서 경험을 고려하면, 책 읽기가 글쓰기의 첫째가는 동력이었을 것이다. 예컨대, 소설 속 고양이는 그레이의 시(「Ode on the Death..

감상글(책) 2021.03.11

<에세이> 가만히 두는 아름다움

문동만, 『가만히 두는 아름다움』, 예옥, 2020. 문동만 시인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좋아하는 게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티비 프로그램 ‘자연인’이 나오면 좀 지켜보게 된다거나, 술 중에 막걸리를 좋아하고 운동 중에 탁구를 좋아한다는 점도 그렇다. 책을 보내면서 딴 사람 이름을 적어 보낸 것도 닮았다. 시인의 산문집 속 탁구론을 보자면, 제법 짜다는 교회 탁구를 지났으며 중간 공백기를 빼고도 이십여 년 탁구를 해왔으니 만만찮은 구력이다.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 공을 받다가 발이 풀리는 나와는 다른 차원에 들어서 있을 것인데, 고수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탁구를 치다 보면 가장 좋은 상대는 끊임없이 받기 힘든 공을 넘기는 사람이다. 실력 있는 상대여서 나의 실력을 높게 해주는 사람이다” 단순하지만..

감상글(책) 2021.02.08

<기행 산문> 시간의 황야를 찾아서

천영애, 『시간의 황야를 찾아서』, 학이사, 2020. - 대구 경북 문학기행이란 부제에서 보듯 답사 관련 산문집인데 우선 반가운 느낌이 드는 건 눈에 익은 공간과 사람들이 주는 정서적 감응 때문에 그럴 테다. 반대로 눈에 설지만 평소 궁금했던 공간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충족할 수 있다. 이런 기대감이 실제 독서의 재미로 이어지기 위해선 아는 사실도 새롭게 환기할 필요가 있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까지 알려주면 좋을 텐데 작가 천영애의 삶과 풍부한 배경지식까지 더해서 듣는 『시간의 황야를 찾아서』를 그렇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버스 타면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에 약전 골목이 있고, 대구 약전 골목은 갈수록 쇠하여지지만 유서 깊은 건물은 여전히 많다. 작가는 김원일 소설가의 ‘마당 깊은 집’(김원일이 ..

감상글(책) 2021.02.04

<에세이> 아, 전태일!

안재성 외, 『아, 전태일!』, 목선재, 2020. 2020년 전태일이 떠난 지 50년을 맞아서 전태일을 기념하는 여러 책들이 출간되었다.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밝힌 근로기준법을 지켜서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대우를 받기 원했던 전태일의 꿈은 다수의 노동자들에겐 이루어지지 않았다. 건설현장의 추락사,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를 연속적으로 겪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까지 앞두고 있지만 기업과 노동자 양쪽에서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전망이야 다를 수 있어도 노동자의 안전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게끔 인식을 바꾸고 실제 투자를 하면 되는 것이다. 통계치가 조금씩 다른 걸 감안하더라도, 매일 3-5명 정도가 산업재해로 사망한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그 두 배 이상이 되고, 좀처럼 믿기지..

감상글(책) 2021.01.26

<에세이> 오늘의 인생 날씨, 차차 맑음

이의진, 『오늘의 인생 날씨, 차차 맑음』, 행성B. 2020. - 오남매 맏이인 저자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로 시작된 이야기는 주로 저자가 이삼십 대에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저자는 연애를 제대로 못하고 결혼했다고 하지만, 많지 않은 연애담에 저자에게 선택받지 못한 남자들의 이야기는 당사자에겐 아픈 기억일지 모르겠지만 독자에겐 재미난다. 형편이 괜찮은 남자 친구가 밥을 많이 샀기에, 밥을 한번 사겠다는 저자의 말에 행복해하며 여자 친구의 주머니 사정까지 고려해서 라면을 굳이 먹겠다고 했던 게 남자의 실착이 되고 말았다. 저자의 말대로 순수하고 고운 청년이었지만 매일 라면을 먹다시피 한 여자와, 어쩌다 한 번 라면을 먹어주는 남자의 차이를 그때의 저자는 필요 이상으로 크게..

감상글(책) 2021.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