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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이은새

봄비 / 이은새 화분에 물을 주듯 비가 온다 물에 빠진 붓이 몸을 털어내듯 봄비가 온다 아다지오로 분무질을 시작한 하늘 바람의 마음을 타면서 방향 감각을 잃고 그렇지만 세심한 줄기로 내린다 어둠 속 보이지 않던 먹구름들 힘을 키우기 위한 세력이었으니 바닥을 구르다 보면 너, 나 할 것 없이 천사의 탈을 쓴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희뿌연 하늘이 내게 보낸 경고의 메시지, 마음을 두드리면 밑바닥까지 스며든 빗방울들 하나가 되기 위한 준비된 장난이었으면 했다 참새 눈물만큼 인색하던 시간도 제 갈 길 가고 언제나 그랬듯이 비 갠 후의 청명한 하늘은 더욱 경쾌함에 신경 쓸 것이리라 웅덩이에 응달진 눈물, 그 자리가 아직 남아 있다면 햇살 쨍쨍한 날 마음을 모두 내려놓아도 좋으리 달아나는 너를 애..

감상글(시) 2023.10.31

병꽃나무를 들이다 / 이비단모래

병꽃나무를 들이다 / 이비단모래 뒤꼍 흰 병꽃나무 무성한데 왜 나는 남의 붉은 병꽃을 탐했을까 -그 꽃 예쁘대 막걸리 한 잔 주며 건넸을 뿐인데 신새벽 뿌리째 뽑아왔네 굳이 달란 건 아니고, 그냥 갖고는 싶었던 남의 것 그것도 남자의 홀로 된 눈동자에 담았을 꽃을 -꽃 피면 같이 보자고 꽃이야 거기 있으나 여기 있으나 똑같은데 왜 내 울안에 놓고 싶었을까 사랑을 내 마음에 가두고 싶었을까 머언 눈으로 봐도 그 자리 있을 너를 -『꽃잠』, 문화의힘, 2023. 감상 – 병꽃나무는 꽃 핀 모양이 병 모양을 닮았다고도 하는데 정확히는, 꽃 피기 직전의 꽃봉오리 모양이 병 모양을 연상케 한다. 물론 병 종류 따라 모양도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니 대충 그렇다는 뜻이긴 하다. 병꽃나무는 꽃의 색깔에 따라 흰병꽃나무와..

감상글(시) 2023.10.25

<에세이> 사람이 사는 미술관

박민경, 『사람이 사는 미술관』, 그래도봄, 2023. - ‘당신의 기본 권리를 짚어주는 서른 번의 인권 교양 수업’. 책 표지에 나온 글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소속으로 인권 교육을 담당했던 저자가 들려주는 인권에 관한 이야기가 책의 주된 내용이며, 그림은 이야기의 실마리 혹은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 소싯적 달력 명화를 보면서 그림에 빠져들었던 경험,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의 그림을 실제 보면서 설렜던 감정 등 그림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전공인 인권을 만나서 저자 스스로 흥을 내면서 글을 썼다는 인상을 받는다. 난해한 이론이나 단순한 지식 나열을 피하고 삶과 결부된 인권의 여러 측면과 그 의미까지 쉽게 풀어쓴 것도 이 책의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여성, 노동, 차별과 혐오 등의 목차에 따라 소개..

감상글(책) 2023.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