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 이은새 화분에 물을 주듯 비가 온다 물에 빠진 붓이 몸을 털어내듯 봄비가 온다 아다지오로 분무질을 시작한 하늘 바람의 마음을 타면서 방향 감각을 잃고 그렇지만 세심한 줄기로 내린다 어둠 속 보이지 않던 먹구름들 힘을 키우기 위한 세력이었으니 바닥을 구르다 보면 너, 나 할 것 없이 천사의 탈을 쓴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희뿌연 하늘이 내게 보낸 경고의 메시지, 마음을 두드리면 밑바닥까지 스며든 빗방울들 하나가 되기 위한 준비된 장난이었으면 했다 참새 눈물만큼 인색하던 시간도 제 갈 길 가고 언제나 그랬듯이 비 갠 후의 청명한 하늘은 더욱 경쾌함에 신경 쓸 것이리라 웅덩이에 응달진 눈물, 그 자리가 아직 남아 있다면 햇살 쨍쨍한 날 마음을 모두 내려놓아도 좋으리 달아나는 너를 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