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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빗물, 습작을 위한 아포칼립스 / 정훈

비와 빗물, 습작을 위한 아포칼립스 / 정훈 태초부터 있으라, 있으라 명령했던 말씀도 저 눈물이 스미는 쓰라림을 창조하진 않았겠다. 저, 저 시큰한 눈물 가락이 모든 통곡의 시초였겠다 벽 속의 창에서 흐느적거리는 저, 스스로 태우지 못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말씀 또한 모든 창조의 씨앗이었겠다 락스를 파는 소아마비 장애자가 포장마차에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막무가내로 팔아달라고 조른다 다음에 사지요, 다음에 사지요, 말하는 포차 주인에게 달려들 듯 몸을 자꾸 흘러만 내린다 저, 저어언에도, 다, 다아, 다엄에, 산다꼬 해짜나요오.. 땅에 완전히 눌러앉아 붙어 말라버린 자국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새들반점』, 함향, 2022. 감상 - 아포칼립스(Apocalypse)는 파멸, 종말, 대재앙의 사전적 의미를 갖고..

감상글(책) 2023.08.13

위험한 길 / 강우현

위험한 길 / 강우현 한때 곁길로 가던 나뭇가지들 톱날이 간섭하자 다시 길을 찾았다 나무의 길은 하늘에 있었다 겨울잠을 깬 어린 나뭇가지 하나 옆구리에서 불쑥 튀어나와 길 아닌 길을 걷고 있다 저것은 위험한 길 바람의 눈이 반쯤 감기자 아직 나무의 길을 익히지 않은 애송이가 철없는 아이처럼 반항하고 있다 함께 할 수 없는 저 길 찔려본 사람들은 다시 톱날을 들이댈지 모른다 작년 옆 나무에서 잘린 가지 하나도 있는 힘을 다해 마지막 꽃을 피우고 갔다 가고 싶은 길은 그렇게 목숨을 걸어야 한다 -『반항을 접은 노을처럼』, 우리시움, 2023. 감상 – 가로수는 곧잘 가지치기 대상이 된다. 이유도 다양하다. 가로수가 가게 간판이나 차량이 오가는 것을 가린다든지, 비바람에 찢어진 가지가 도로를 덮쳐 위험할 수 ..

감상글(시) 2023.07.27

<에세이> 숲과 대화할 시간입니다

김태일, 『숲과 대화할 시간입니다』, 학이사, 2023. - 무슨 일이든 그 일이 좋아서 시작한 것이라는 가정 하에 10년 차가 되면 그 일에 익숙해지고, 그 일을 좋아하는 마음이 더 깊어지고 그런 만큼 그 일의 가치와 매력에 대해서 할 말이 풍성해진다. 모든 스포츠를 섭렵한 저자는 테니스에 푹 빠져 가정에 소홀했던 시절도 있었고 골프, 탁구 등에도 상당한 시간을 바쳤지만 그가 정작 미는 것은 순간적으로 힘을 써야 할 스포츠 대신에 숲속 걷기다. 저자는 앞산 자락 고산골 숲 걷기 10년 차다. 이 책은 숲 걷기가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10년 차의 시각을 넘어서 30년, 40년 고수의 아우라가 있다. 숲 걷기보다 오래 이어온 신문기자의 감각으로 고산골을 30년, 40년 찾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포함해서 고산..

감상글(책) 2023.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