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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 / 도경회

소한 / 도경회 녹내장에 걸린 저수지 살얼음 반 너머 깔린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따뜻한 운석 얼음에 쩡 금이 간다 밤 깊을수록 하늘 팽팽해지고 풍덩 풍 잔 메아리 일구며 돌 떨어지는 소리 잦다 물이 가슴 뚫리면서 너울에 솔개바람 인다 목숨의 둘레를 돌려가며 갑옷 구멍처럼 홀쳐서 찢어지지 않게 깁고 있다 무리를 이끄느라 피멍 든 죽지 세상 후미진 밑바닥 훑어서 밥 벌어오던 아버지 -『데카브리스트의 편지』, 우리시움, 2022. 감상 – 24절기 중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은 마지막에 놓이며 이름에서 보듯 가장 추운 날에 해당한다. 북쪽의 작은 저수지라면 꽝꽝 얼 때가 많지만 남녘의 저수지도 영하의 날씨에 살얼음 끼는 건 종종 보게 되는 일이다. 살얼음은 그리 단단한 얼음은 못 되는 것인데 운석이 자꾸 부딪..

감상글(시) 2023.06.27

<산문> 득량, 어디에도 없는

양승언, 『득량, 어디에도 없는』, 글을낳는집, 2023. - 작가는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평생 화두로 품고 지낸다. 근래 2년여를 머물며 이곳이야말로 최적의 고장이라고 얘기하고 책으로 엮게 된 곳이 바로 남도의 장흥, 보성, 고흥으로 이어지는 득량이다. 작가가 인연이 되어 머문 곳은 보성 일림산 정씨고택과 삼의당이다. 보성과 득량만에 대한 작가의 사랑은 지극하다. “보성 지역을 간략하면 동벌서포라고 할 수 있다. 동쪽에 벌교가 있고 서쪽에 율포가 있다는 뜻이다...또 다른 표현으로 옮기자면 동꼬서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동쪽 벌교는 꼬막이, 서쪽 율포는 낙지가 대표적 먹거리라는 의미다”. 해산천야(海山天野) 즉, 바다와 산과 들판과 하늘을 고루 갖춘 “천혜의 땅은 대한민국 남..

감상글(책) 2023.06.25

모듬살이 / 김병해

모듬살이 / 김병해 올해도 마당귀 들꽃 더미 여럿 담뿍 어름더듬 곁을 넓혀 무람없이 들어앉는다 해마다 들이미는 해사한 낮은 호명 들며 나며 눈인사만 멀찍 건넸댔는데 여러 해 어깨맞춤하며 마주하다 보니 꽃문 여닫는 시기며, 본곶은 어디인 것 하며 새새틈틈 드는 길손, 바다 구름 벌 나비랑도 살가운 안면 트는 막연지간이다 싶어 입때껏 너나들이하며 두루뭉술 한집살이 맹랑한 무단잠입 내내 눈감아 줬더니 글쎄나 그새 거푸 슬하 식솔 여럿 불려 흔전만전 붙박이로 눌러앉을 모양이네 이참 만부득이 집세 솔찬히 받아낼까 보다 얼추 어림셈해도 곳간 꽤나 두둑하겠네 허나 어쩌랴, 나 또한 저들과 어금지금 이곳 별 잠시 들른 무전취식 모듬살이인 것을 -『오늘은 너에게로 진다』, 문학의전당, 2023. 감상 – 시인의 집 마당..

감상글(시) 2023.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