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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이거나 마녀이거나 / 전선용

미녀이거나 마녀이거나 / 전선용 보이지 않는 곳까지 봤다는 말은 기망(欺妄)이다 양귀비가 가진 힘이 중독성이라면 아편은 지옥문이 열리는 무덤, 손톱 밑에 혀를 밀어 넣고 독을 빠는 동안 별은 창틀에 끼어 급사했다 황홀하게 익숙한 밤 마법에 걸린 연애 습성은 마약과 같다 점 하나를 숨기고 유유히 바다로 간 미녀 해무가 그녀라는 소리가 있고 수평선이 그 여자라는 전설이 있다 파랑을 견뎌낸 섬 환락의 껌을 씹는 마법은 착란이었으니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지의 계(界) 문장의 비문처럼 난해한 점의 출처가 사내에겐 못이 됐다 저기 점 박힌 여자, 여기 못 박힌 남자, 꽃 지고 난 자리 시체 투성이다 -『그리움은 선인장이라서』, 생명과문학사, 2023. 감상 - 「미녀이거나 마녀이거나」는 남해 여행 중에 구상한 시라..

감상글(시) 2023.09.17

<소설> 모모

미하엘 엔데(한미희 역), 『모모』, 비룡소, 1999. 『모모』는 1970년 탄생한 책이다. 소설 속 모모는 폐허가 된 원형극장에 사는 고아 소녀다. 미하엘 엔데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끝없는 이야기』의 주인공 바스티안도 어머니 없이 외로움 속에 자라는 아이다. 다만 모모는 친구의 따돌림으로 괴로워하던 바스티안과 다르게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모모는 원형극장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귄다. 친구들이 모모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얘기를 잘 들어주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을 말을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며 서술자는 모모의 재주를 특별한 것으로 여긴다. 원형극장을 찾는 많은 친구들 중에서도 도로 청소부 베포와 관광 안내원 기기는 더 각별한 친구다. 베포는 말이 더디..

감상글(책) 2023.09.14

소림사의 광두일귀

소림사의 광두일귀 무림일기9 / 유하 단 일 검으로 삼 장 거리의 나뭇잎까지도 베어버린다는 공전절후한 필살 검법의 소유자 건곤일검 호용비도 자신은 검법의 검 자도 모른다며 소매를 휘휘 저었다 공수도 한 방이면 온 무림을 시산혈해로 만들 수 있다던 냉면나찰객 왕쇠도 불초는 그런 말을 해서도, 할 수도, 한 적도 없었다고 뜨거운 차 한잔 마실 동안이나 홍알댔다 이렇듯 일세를 풍미한 고수들의 오리발 검법이 난무하는 가운데 열린 무림 청문대회 그러나 정작 모든 재앙의 장본인인 광두일귀는 삶은 만두피 하난 만진 적 없다는 그의 처 독서시 염자홍과 함께 한때 그가 탄압했던 소림사에 은거하며 공수무극파천장의 독랄하고도 광오한 구결 대신 공즉시색 색즉시공을 끝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림사의 허망함과 함께 깊어가는 소림..

감상글(시) 2023.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