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시초(夏日詩抄) / 신동집 여름도 방학철 오전 한때를 서창(西窓)에 다붙은 포도시렁 아래 고흐의 걸상을 내다놓고 한동안 시름없이 잠기는 일이 있다. 댓평 될까마는 땅그늘이지만 오전엔 집에서도 기중 시원한 곳이다. 담장과 시렁 사이로 열린 하늘 조각이 또한 유난히 맑은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여름날의 내 영혼의 빛깔이랄까. 이 파란 하늘 조각을 무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덧 허공엔 빈 조롱이 하나 흔들리듯 말며 시름없이 걸려 있다. 이따금 한두 마리 이승의 새는 날아가도 그들 눈에 이 조롱은 보일 리 만무하리라. 조롱 속에 담긴 내 마흔의 여름날들, 생각은 하염없이 물레실을 푼다. 어느덧 뙤약빛도 발밑으로 밀리고 시렁에도 후끈한 김이 서리면 다른 데로 나는 또 그늘을 옮겨야 한다. 그러나 조롱은 매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