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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풍경의 에피소드

이창윤, 『풍경의 에피소드』, 시와에세이, 2023. - 명륜동, 용산동, 상도동, 신림동 지하실 셋방, 난곡동, 부천, 영등포. 그리고 대구. 이창윤 시인이 살았던 곳이다. 용산동과 후암동은 해방촌이 있는 남산도서관 일대인데 이 시절 어머니를 여읜다. 용산동의 어린아이는 훗날 시인이 되어 이때의 슬픔을 “기억의 안간힘은 펄럭임도 없이/ 정지화면으로 멈춰 있네요”(「기억의 처음」)로 표현해 두었다. 상도동은 아버지가 빚쟁이를 피해 간 곳이다. 그 무렵 굶주린 남매들에게 아버지는 집의 괘종시계를 저당 잡히고 그 돈으로 국수를 사준다. 이 때의 심정은 시 「그날의 국수」로 남았다. 시인에게 괘종시계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난곡동으로 이사하면서 시계는 시간을 틀리게 알려주고 아버지도 부쩍 늙어간다. 괘종시계..

감상글(책) 2023.05.07

<에세이> 시지프스를 위한 변명

윤일현, 『시지프스를 위한 변명』, 학이사, 2016. - 『시지프스를 위한 변명』은 시인이면서 교육평론가인 윤일현 저자의 교육 인문학 혹은 인문학 교육 같은 책이다. 동서양 고전과 인물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에 사회 변화상을 읽고 교육 전문가의 생각을 더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저자가 한 손에 책을 든 정치인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마오쩌둥이 60세에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영어 공부를 시작할까 말까 고민하는 오십 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말이어서 스티커 한 장을 붙인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호찌민도 여행과 독서를 통해 지도자 역량을 쌓은 걸로 소개되어 있다. 저자 자신도 독서광의 매력을 발산한다. 신호대기 중에 『말테의 수기』를 잠깐 읽는다는 게 뒤차가 경적을 울리고 심지어 ..

감상글(책) 2023.04.28

복로방(福爐房) / 여상현

복로방(福爐房) / 여상현 고린 자반 토막 퀴퀴한 길목짝 저마다 고달픈 노염인 양 뿜어대는 자욱한 담배연기 복로방 유난히 낮은 천정이 지친 나그네들의 가슴을 누른다 자꾸만 흐려지는 남포등 심지 돋구며 돋구며 갈(渴)한 하품 속에 다시금 내일의 이정(里程)을 헤아리며 감발을 푼다 돌아앉아서 부스럭대던 웬 중년 나그네 은전(銀錢) 소리를 내고 저 혼자 놀라 주춤하고 수잠을 자던 황아장수 영감도 덩달아 놀란다 목침을 못 벤 불평은 초저녁부터 코들이 들고 일어났고 「감돌」을 꺼내 보이며 입심껏 떠들던 영감님 긁적긁적 샤쓰 밑에서 금을 파는 게다 「대한독립」을 이러니저러니 큰 기침 섞어가며 떠들던 노인도 상노아이 못 데리고 온 것이 무척 뉘우치는 듯 안절부절못하다가 새우잠이 들었다 죽창(竹窓)을 밝히는 뜰 앞 장..

감상글(시) 2023.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