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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박규리,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미술문화, 2017. - 유영국(1916-2002, 울진)의 삶과 예술에 대해서 박규리 시인이 쓴 책이다. 유영국은 울진보통학교 졸업 후 경성제2고보(경복고) 다니던 중 담임과 불화로 자퇴한다. 당시 학교 미술 선생이었던 사토 쿠니오 선생이 일본 본토의 도쿄 문화학원 교수로 부임해간 것이 계기가 되어 문화학원 미술부를 선택해서 유학길에 오른다. 문화학원은 이중섭, 문학수, 김병기 등도 스쳐간 곳이다. 귀국 후 죽변항에서 큰 어선의 관리자가 되어 어획고를 높이는 데 신경쓰고 있을 무렵 김환기의 주선으로 서울대 응용미술과 전임으로 가게 된다. 당시 학부장은 장발, 교수과장은 김용준인데 이후 우익적 성향의 장발과의 갈등으로 2년 반 만에 사표를 썼다고 한다. 전쟁 ..

감상글(책) 2022.09.14

<에세이> 문학 시간에 영화 보기 1, 2

박일환, 『문학 시간에 영화 보기 1, 2』, 한티재, 2022. - 박일환 시인이 영화를 읽었다. 시인이 주목한 것은 시가 인용되거나 영화 스토리 전개에 시가 개입하는 영화들이다. 시인은 국어대사전의 잘못된 표제어나 용례를 귀신처럼 찾아내고 꼼꼼하게 고증해서 세상에 내놓은, 공부하는 학자이기도 한데 영화 읽기도 그만큼 내용이 깊고 풍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영화 안의 시를 다루는 것이니 영화 줄거리 소개나 서사 흐름을 좇아가는 건 불가피한 면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스포가 될 여지도 있다고 하겠지만 그보다는 놓친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들게끔 해준다. 그 영화가 갖고 있는 매력, 영화 속 긴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시의 연출 의도를 차례차례 짚어주는 시인만의 안목이 책에 배여 있고, 그걸 영..

감상글(책) 2022.08.31

성(城) / 구자운

성(城) / 구자운 우리들은 줄곧 성을 찾아왔다. 우리들의 성은 허지만 큰거리에서 별로 멀진 않다. 그것은 숯검정 낀 부엌의 기름내 자오록한 텅 빈 걸상이 널리운, 뒷골목의 목로 술집이니까. 우리들은 어느 때보다 일찌감치 안방을 차지하였다. 이렇듯 먼지 이는 날씨엔 목구멍이 컬컬해진다. 우리들은 술을 기울여 다시금 탄약에 불을 붙였다. 종이 바른 벽을 뚫고서 포탄이 뛰쳐나갔다. 거리는 조용하여 참새 새끼 한 마리도 없다. 오후의 햇살에 눈 녹은 고드름이 빛나고 있다. 우리들의 악당은 사뭇 여러 방향에서 솟아나온다. 그것은 우리들의 탄환으로 하나하나 거꾸러진다. 어떤 악당은 한창 용감히 덤벼든다. 아주 권력이 있는 것인 양, 하지만 술에 빠져 떠내려가는 것이 이런 치들이다. 어떤 악당은 좀 경망한 주제에 ..

감상글(시) 2022.08.28

<에세이> 이규일의 미술 사랑방

이규일, 『이규일의 미술 사랑방』, 랜덤하우스, 2005. - 월간 《Art in culture》에 2년 간 동 제목으로 연재한 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연재 기간 중, 2003년 5월, 청강 김영기 화가가 돌아가셨고, 2004년 3월 김환기의 아내인 김향안 여사가 뉴욕에서 돌아가셨다. 2004년 4월 최순우 옛집 개소식이 있었고, 2004년 10월 삼성미술관 리움이 문을 열었고, 이영미술관에선 박생광 전시회를 개최했다. 머리말에 소개되기도 했던 일련의 일들을 저자는 예술가의 생애나 작품을 연결 지어 이야기해 주고, 예술 그 뒷이야기까지 보태면서 흥미를 자아낸다. 저자는 남정숙 여사를 인터뷰한 것을 바탕으로 변종하의 삶과 그림에 대해 얘기한다. 변종하(1926-2000) 는 대구 출신이며 계성중학교에서..

감상글(책) 2022.08.24

<에세이>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 장석주,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샘터, 2015. 독서광으로 알려진 장석주 시인의 독서 이야기다. 여는 글에서, “인생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이토 다카시의 말과 “책을 사는 것은 책을 읽을 시간도 함께 사는 것이다”란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며 책을 사서 읽을 것을 거듭 주문한다. 시인은 그 근거로 런던 택시 운전기사와 런던 일반인들의 뇌구조를 자기공명영상으로 비교했던 사례를 인용한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이 공간 탐지와 관련되는 기억 관리 부분인 해마가 서로 달랐다고 하니, 책 읽은 사람의 뇌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뇌도 다르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시인은 십 대에서 이십 대에 이르는 청년들이 읽어 보았으면 하는 책 다섯 권으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알베르 카..

감상글(책) 2022.08.23

촐촐하다 / 홍해리

촐촐하다 / 홍해리 깊은 겨울밤 잠 오지 않아 뒤척이는데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 누가 술상이라도 보는가 생각은 벌써 술잔에서 촐촐 넘치고 창밖엔 눈이 내리고 있는지 곁엔 잠에 빠진 아내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마음이 지워지다』, 놀북, 2021. 감상 : 홍해리 시인은 치매에 이른 아내를 옆에서 돌보면서, 일종의 간병기(看病記)와 같은 421편의 시를 네 권의 시집으로 묶어서 출간한 바 있다. 홍해리 시인에게 시 쓰는 일은 평생을 밥 먹듯이 숨 쉬듯이 해온 일이기도 했지만, 치매행 관련 시집은 치매 가족이나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한 땀 한 땀 깁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육필 시다. 『마음이 지워지다』는 기존의 네 권 시집에서 출판사 놀북이 가려 뽑..

감상글(시) 2022.08.21

<소설> 세월

윤혁, 『세월』, 신세림출판사, 2022. - “허위의식 없는, 위선과 편견 없는, 자유로운 이야기” 쓰기를 갈망해왔다는 작가의 단편 모음집이다. 허위의식이 없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말처럼 소설은 작가가 성장해온 환경이나 작가가 지내왔던 공간에 대한 경험과 그 경험에서 파생되는 인간관계의 이모저모와 갈등 국면이 많다. 또 자유롭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의도처럼 등장인물을 지배하거나 특정 결론을 유도하려는 움직임을 애써 피한다는 생각도 든다. 10편의 소설 중 ‘백자주병(白瓷酒甁)’은 1970년대 부산의 빈민가를 무대로 하고 있다. “동네 중심부에는 ‘기차표 신발’이라는 명칭의 신발공장이 중세 유럽의 성채처럼 동네를 내려다보며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기차표 신발공장’ 담 너머에는 오래된 판잣집과 일자..

감상글(책) 2022.08.16

귀향 / 조세림

귀향 / 조세림 팔월달 이랑진 바다 위로 산악(山岳) 같은 배는 비트적비트적 육중한 몸을 옮긴다 손들면 만저질 듯 함폭 내려앉은 하늘 한여름 따가운 햇살이 이글이글 뱃전에 흐르고 저 멀리 대륙의 변두리를 스쳐온 바닷바람에 머리칼은 하늘에 대고 넥타이는 깃발처럼 펄럭인다 담배도 사랑도 오늘은 시들하다 눈초리를 저기 아득한 수평선 위에 던지고 팔짱을 끼니 가슴속 설레는 피의 파도 귀에 아련히 들릴 듯싶다 고향 떠난 지 십 년째… 옛 그날 내 양자(樣姿) 그려 고요히 눈감으니 떠오르는 건 몹시도 여위어진 고향의 얼굴 문득 황소처럼 소리쳐 울고 싶구나 -『세림 시집』(시원사, 1938) /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선우미디어, 2000) 감상 – 영양 주실마을 동구 숲엔 조지훈 시비와 함께 조세림(본명..

감상글(시) 2022.08.11

<에세이> 아트로포스의 가위

정점식, 『아트로포스의 가위』, 흐름사, 1981. 정점식(1917-2009, 성주 출신) 화가는 김환기, 김병기, 유영국 등과 함께 한국 추상화의 1세대로 언급된다. 대구 계성학교, 계명대학교 등에서 근무하면서 그림 창작과 수업을 병행하며, 4권의 에세이까지 남겼다. 『아트로포스의 가위』란 제목은 화가가 봤던 ‘운명의 세 여신’이란 조각에서 빌려왔다. 파손된 형태 그대로에서 작가는 더 큰 감동을 받는다. 세 여신은 각각 클로토(인간 운명의 실을 잣는 여신), 라케시스(실을 감는 여신), 아트로포스(운명의 실타래를 자르는 여신)다. 아트로포스는 이승과 저승, 이쪽과 저쪽의 운명을 가차 없이 자르는 가위를 손에 지녔지만 잘려나간 조각상에선 찾아볼 수 없다. 없지만 이어보고, 그려보는 게 작가의 상상력이긴 ..

감상글(책) 2022.08.10

시인들의 술상 / 김완

시인들의 술상 / 김완 시인들의 술상이 너무 고급이다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안주에서는 기름지고 뚱뚱한 시가 나오기 마련 한 그릇 국밥에 맑은 영혼을 말아 깍두기 한 접시 된장에 찍어 먹는 양파, 매운 고추면 만족해야 하리 피와 땀과 눈물에 경배하며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는 정신으로 푸른 하늘의 자유를 노래해야 하리 이 세상의 온갖 상처를 안주 삼아 막걸리 한 병 소주 한 병이면 족해야 하리 지상의 낮고 어두운 곳까지 내려가 아물지 않는 상처에서 희망의 꽃 다시 피울 그날까지 기다려야 하리 선악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일수록 허기가 정신을 맑게 한다는 말 온몸에, 뜨거운 가슴에 새겨야 하리 『지상의 말들』, 천년의시작, 2022. 감상 – 온몸으로 밀고 나가서 시를 쓸 것을 주문하면서, “어째서 자유에는 / 피의..

감상글(시) 2022.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