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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목단강행 열차

목단강행 열차... 괜히 설레는 이름이다. 전광용(전광용문학전집1), 『목단강행(牧丹江行) 열차』, 태학사, 2011 - 전광용 소설가의 고향은 함경북도 북청이다. 해방 후 남북이 갈리고 서울에서 유학하던 전광용은 고향집과 서울을 어렵게 왕복하지만, 서울을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감금이 되어 곤경을 치른 후 1947년 봄, 서울로 내려왔고 그 이후 전쟁과 분단을 겪으며 다시 고향에 가지 못한다. 자전적 소설 『목단강행(牧丹江行) 열차』는 고향을 얘기한 작가의 수필 내용이 상당 부분 반영된 걸 보면 ‘그’라는 삼인칭을 쓰지 않았으면 수필로 보아도 무방했을 것이다. ‘그’의 고향 북청은 여진족의 유적으로 알려진 옛 성터가 남아있는 곳이고, 진흥왕순수비가 있는 만령 시중대의 바닷가 경치도 좋단다. 서울에서 북청..

감상글(책) 2022.06.23

고춧가루 / 조한수

고춧가루 / 조한수 가을이 마당에 내려앉은 어느 날 조상님들 묘 이장 보상금 신청을 위해 고향인 밀양 당숙 집에 갔다 일찍이 부모를 여읜 나는 당숙을 부모로 생각했으며 당숙께서도 집안의 종손인 나를 끔찍이 생각해 주셨다 밀양에 나노복합융합 단지가 건설되면서 생활 터전 모두를 잃게 되었으며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농사일을 놓지 않으셨던 당숙 이제 보상금 받아 딸들이 사는 진해로 이사 간다고 하셨다 묘 이장 보상금 신청을 마치고 집으로 모셔다드리니 까만 비닐봉지에 고춧가루 다섯 근을 이중, 삼중으로 포장하여 주시며 ‘이 고춧가루가 이제 마지막이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나는 ‘땡초 고춧가루는 아니지예?’하며 딴청을 피웠다 올해 김장김치는 엄청 매울 것 같다. -『애인』, 홍두깨, 202..

감상글(시) 2022.06.20

달리 씨네 쌀 배달하기 / 변홍철

달리 씨네 쌀 배달하기 / 변홍철 나는 자동차도 없고 자전거도 없는데 주인이 쌀 배달을 나가라고 한다. 어깨에 쌀 한 가마니를 얹고 달렸다. 십 리가 넘는 길이라고 했다. 알 듯한 얼굴의 세 인물이 동행이랍시고 따라나섰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된다. 자기들끼리 찧고 까분다. 누렇게 벼가 익은 들판이다 저기에는 복사꽃이 환하게 핀 풍경은 아름다운 그림 속. 소나기도 내리고, 나는 흠뻑 젖었는데 이상하게 별로 힘은 들지 않는다. 아니 힘은 펄펄 남아돌아 한참을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배달 가는 집을 못 찾겠어서 짜증이 난다. 휴대폰도 없는 나는 뒤에서 찧고 까부는 이들에게서 전화기를 빌려 쌀 배달시킨 집 주인이랑 통화, 어, 아는 목소리다. 푸른 기와집에 산다고 했던가. 친절하긴 한데 설명이 ..

감상글(시) 2022.06.15

<에세이> '사랑이 밥 먹여준다' 와 '영성에의 길'

김하종, 『사랑이 밥 먹여준다』, 마음산책, 2021. 헨리 나우웬(김명희 역), 『영성에의 길』, IVP, 2002. - 남을 돕고 사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사람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 실천은 못해도 마음은 그렇다. 대체로 종교인들이 실천까지 이어지는 경우를 종종 봐왔기에 비록 나 자신은 무교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이웃을 챙기는 종교인을 흠모하게 된다. 근래 다른 분의 소개와 선물로 온 두 권의 책에서 만난 김하종과 헨리 나우웬도 훌륭한 종교인이란 생각이 든다. 먼저, 김하종의 『사랑이 밥 먹여준다』를 보자. 이탈리아 소년 빈첸조는 어릴 때 친구들로부터 맞고 울면서도 맞서 싸우고 때리는 일은 주저하는 친구다. 읽고 쓰는 일이 또래보다 더딘 난독증도 있었다. 자신과 주위에 그늘을 드렸을 난독증이 오히려 타..

감상글(책) 2022.06.12

청파동 / 박목월

청파동(靑坡洞) / 박목월 밤 늦은 청파동 마지막 합승을 타고 가면 숙대입구 가까운 어느 막다른 골목은 비어 있었다. 그 골목은 강소천의 가랑잎처럼 바튼 음성이 깔렸는데 소천은 어디로 갔느냐. 죽었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자정 가까운 밤 마지막 합승을 타고 가면 빈 골목은 두렵다. 발목이 잠긴 가로등이 있어 빈 골목은 더욱 두렵다. -『경상도의 가랑잎』, 1968 (『박목월 시전집』, 민음사, 2003) 감상 : 강소천(1915∼1963)은 함경도 고원 출신이다. 1941년,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 하늘 한 번 쳐다보고 /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 구름 한 번 쳐다보고”(‘「닭」’ 전문)가 실린 동시집 『호박꽃 초롱』을 출간한다. 함흥 영생고보 선생이었던 백석이 세 살 아래인 늦깎이 제자 강소천의..

감상글(시) 2022.06.10

<그림 에세이> 박고석

박고석, 『박고석』, 열화당, 1994. 산을 즐겨 그려 산의 화가라 불리는 박고석(1917-2002)은 평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숭실중학교에 다닐 무렵, 모든 종류의 스포츠를 좋아하고 싸움도 곧잘 하는 소년이었다. 그런 중에 화구를 메고 기자묘나 능라도 등에서 자연을 화폭에 담는 데 열중한다. 건강한 심신의 피로를 맛보는 게 그림의 매력이었단다. 일본 유학 중 해방 되어 고향인 평양에 머물던 박고석은 첼리스트 전봉초와 함께 남으로 내려오고 이후 이산가족이 되었지만 『박고석』 책에서 고향 이야기와 부모님 이야기는 많지 않다. 집필을 위해 따로 쓴 것이 아니라 그간 쓰거나 발표했던 글을 모은 것이다 보니, 할 말은 많아도 미처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952년 12월 피난지 부산 르네상스 다방에서..

감상글(책) 2022.06.01

<여행 에세이> 스무 색깔 스무 느낌

박운석, 『스무 색깔 스무 느낌』, 상상나무, 2007. - 신문기자 시절, 작가는 여행 코너를 맡아 전국을 부지런히 다녔다. 이 책은 발품 팔아 다닌 곳 중에서 경상도 여행지를 답사하고 소개한 책이다. 예천 회룡포, 안동 봉정사, 청송 절골, 합천 황매산, 경상북도 수목원과 기청산 식물원, 통영과 연화도 등 소개된 여행지는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도 비교적 분잡하지 않은 곳이다. 물질과 자본의 침투를 살짝 비켜 있으면서 자연 속에서 인문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책이 출간된 지 십오 년 되었고 그간 세상이 많이 바뀌었음에도 관련 여행지를 이해하는 데 당시와 현재의 시차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작가가 안내해준 여행지는 이전 날 내가 즐겨 다녔던 공간과 꽤 일치한다. 작가는 여행지..

감상글(책) 2022.05.29

개가 이끄는 평상의 낙서 / 문동만

개가 이끄는 평상의 낙서 / 문동만 나보다 오래 산 참나무에서 상수리 떨어져 조용히 굴러간다 흰둥이는 상수리 냄새를 맡았다가 먹을 수 없는 것들을 체념하고 나도 가리는 것이 있어 꺾어지지 않고 식량에 체하지 않고 요행이 여기까지 굴러왔구나 이런 생각이나 굴린다 우리는 평상에 엎드려 찐 밤을 까먹는다 나보다 밤을 더 좋아하는 강아지가 더 사람 같구나 생각이 들고 까먹으며 까먹는다는 말이 온 곳이 어디 사전 속인가, 어떤 주머니던가 자궁 속이나, 어디 점방이던가 하며 말에 말을 물고 흩어지고 모이는 구름들을 허밍으로 당긴다 평상에 누워 평(平)이라는 말, 평평 평등 평화 평정 평온 평원 오, 아들은 평발이로군 넓게 퍼져야 할 아깝고도 애틋한 말들을 오는 것 같았다가 돌아가는 말들을 까먹는다 -『설운 일 덜 ..

감상글(시) 2022.05.26

<소설> 벽오금학도

이외수, 『벽오금학도』, 동문선, 1992.( 해냄, 2014)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선계)을 잇는 묵림소선의 그림 한 장. 족자 속 그림엔 금학 한 마리가 날개를 펴서 벽오동나무 위로 내려앉고 아래에 있던 동자 한 명이 그걸 무심히 쳐다보는 광경이 나온다. 주인공 은백이 우연찮게 건너간 선계에서 얻은 그림이다. 선계에선 금학이 자유롭게 오가고 그림을 뚫고 나오기도 한다. 은백은 자신의 이름처럼 머리가 하얗게 세어서 이쪽 세상으로 건너온다. 들고온 그림만이 저쪽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열쇠인데 비밀의 문을 열기 위해선 인연 있는 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게 소설 기본 얼개로 작용하고 있다. 은백의 고향집은 농월당이다. 반은 신선 같은 할아버지, 집을 비운 아버지,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할머니가 ..

감상글(책) 2022.05.24

단오살구 / 김성중

단오살구 / 김성중 살구의 파아란 볼이 노랗게 주황으로 물들면 살구나무는 살구를 떨어뜨린다 담세정 살구는 씨알이 적지만 매우 달콤하고 무정식당 살구는 텅 빈 가스탱크 무서워서 힘이 없어 보이고 무정식당 주차장 모퉁이 살구는 국도 29호선을 질주하는 자동차 소음에 시달리며 누르스름하게 익어서는 똑똑 떨어지고 관방제림 주차장 살구는 얼굴빛이 불그죽죽한데 마을 사람들이 장대로 후려 금방 사라졌고 계석대 살구는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겨우 보이고 황금소나무 식당 마당 살구는 풋살구를 떨구며 익어가고 백진각 옆 동정자마을 살구는 씨씨티비가 감시한다며 무서워하고 본때식당 살구는 내가 찾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며 익어가고 감나무집 살구는 노랗게 익어가는데 울타리가 쳐져 만날 수가 없고 만덕산 옥천골 법주사 입구 고목..

감상글(시) 2022.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