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550

<에세이> 과일과 한시 이야기

조영임, 『과일과 한시 이야기』, 종이와나무, 2018. - 저자는 중국 사범대학에서 한국어학과 교수로 일한다. 한국의 고전에 해박하며 한국과 중국의 문화를 두루 아우르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데 이런 평은 『과일과 한시 이야기』에 고스란히 적용된다. 과일에 담긴 사연과 문화를 소개하며 한시에 등장하는 과일 이야기까지 보태어 일상 속에 접하는 과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교양을 쌓게 한다. 다래에 대한 소개를 보자면, “다래는, 봄에 갓 올라온 야들야들한 연둣빛 순을 따서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한다. 다래순 나물은 소박하지만 봄의 향기를 만끽하기에 더없이 근사하다. 봄에 채취해서 말렸다가 묵나물로 밥상에 올리면 또 다른 별미이고 품격 있는 반찬이 된다.”고 했다. 다래가 갈증 해소에 좋다는데 매실, 살구, ..

감상글(책) 2022.10.10

<산문> 다시 내릴 비

김사윤·박경주, 『다시 내릴 비』, 2022, 정한책방. - 박경주 작가의 산문은 일상의 여러 장면을 지나오며 그때그때의 생각이 어떠했는지를 차분한 어조에 발랄한 정서로 교묘하게 직조해서 세상에 내놓은 글이다. ‘나’를 드러낸 수필이면서, ‘나’와 무관하지 않은 주변인물의 일면을 스케치하듯 그려낸 짤막한 사적 소설 같은 느낌도 준다. “여름이면 / 좋아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들고 / 단골 커피숍에서 더위를 피하자”(「그대와 함께」 중)라는 작가의 시를 읽으니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가 얼핏 떠오른다. 이상화 시인이 태어나고 자랐다는, 오래된 라일락나무가 인상적인 지역 카페였는데,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야트막한 지붕의 주택을 약간만 손을 본 따스한 느낌의 카페”(「남자 이야기」 중)라고 묘사한..

감상글(책) 2022.10.08

<에세이>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박규리,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미술문화, 2017. - 유영국(1916-2002, 울진)의 삶과 예술에 대해서 박규리 시인이 쓴 책이다. 유영국은 울진보통학교 졸업 후 경성제2고보(경복고) 다니던 중 담임과 불화로 자퇴한다. 당시 학교 미술 선생이었던 사토 쿠니오 선생이 일본 본토의 도쿄 문화학원 교수로 부임해간 것이 계기가 되어 문화학원 미술부를 선택해서 유학길에 오른다. 문화학원은 이중섭, 문학수, 김병기 등도 스쳐간 곳이다. 귀국 후 죽변항에서 큰 어선의 관리자가 되어 어획고를 높이는 데 신경쓰고 있을 무렵 김환기의 주선으로 서울대 응용미술과 전임으로 가게 된다. 당시 학부장은 장발, 교수과장은 김용준인데 이후 우익적 성향의 장발과의 갈등으로 2년 반 만에 사표를 썼다고 한다. 전쟁 ..

감상글(책) 2022.09.14

<에세이> 문학 시간에 영화 보기 1, 2

박일환, 『문학 시간에 영화 보기 1, 2』, 한티재, 2022. - 박일환 시인이 영화를 읽었다. 시인이 주목한 것은 시가 인용되거나 영화 스토리 전개에 시가 개입하는 영화들이다. 시인은 국어대사전의 잘못된 표제어나 용례를 귀신처럼 찾아내고 꼼꼼하게 고증해서 세상에 내놓은, 공부하는 학자이기도 한데 영화 읽기도 그만큼 내용이 깊고 풍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영화 안의 시를 다루는 것이니 영화 줄거리 소개나 서사 흐름을 좇아가는 건 불가피한 면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스포가 될 여지도 있다고 하겠지만 그보다는 놓친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들게끔 해준다. 그 영화가 갖고 있는 매력, 영화 속 긴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시의 연출 의도를 차례차례 짚어주는 시인만의 안목이 책에 배여 있고, 그걸 영..

감상글(책) 2022.08.31

<에세이> 이규일의 미술 사랑방

이규일, 『이규일의 미술 사랑방』, 랜덤하우스, 2005. - 월간 《Art in culture》에 2년 간 동 제목으로 연재한 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연재 기간 중, 2003년 5월, 청강 김영기 화가가 돌아가셨고, 2004년 3월 김환기의 아내인 김향안 여사가 뉴욕에서 돌아가셨다. 2004년 4월 최순우 옛집 개소식이 있었고, 2004년 10월 삼성미술관 리움이 문을 열었고, 이영미술관에선 박생광 전시회를 개최했다. 머리말에 소개되기도 했던 일련의 일들을 저자는 예술가의 생애나 작품을 연결 지어 이야기해 주고, 예술 그 뒷이야기까지 보태면서 흥미를 자아낸다. 저자는 남정숙 여사를 인터뷰한 것을 바탕으로 변종하의 삶과 그림에 대해 얘기한다. 변종하(1926-2000) 는 대구 출신이며 계성중학교에서..

감상글(책) 2022.08.24

<에세이>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 장석주,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샘터, 2015. 독서광으로 알려진 장석주 시인의 독서 이야기다. 여는 글에서, “인생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이토 다카시의 말과 “책을 사는 것은 책을 읽을 시간도 함께 사는 것이다”란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며 책을 사서 읽을 것을 거듭 주문한다. 시인은 그 근거로 런던 택시 운전기사와 런던 일반인들의 뇌구조를 자기공명영상으로 비교했던 사례를 인용한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이 공간 탐지와 관련되는 기억 관리 부분인 해마가 서로 달랐다고 하니, 책 읽은 사람의 뇌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뇌도 다르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시인은 십 대에서 이십 대에 이르는 청년들이 읽어 보았으면 하는 책 다섯 권으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알베르 카..

감상글(책) 2022.08.23

<소설> 세월

윤혁, 『세월』, 신세림출판사, 2022. - “허위의식 없는, 위선과 편견 없는, 자유로운 이야기” 쓰기를 갈망해왔다는 작가의 단편 모음집이다. 허위의식이 없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말처럼 소설은 작가가 성장해온 환경이나 작가가 지내왔던 공간에 대한 경험과 그 경험에서 파생되는 인간관계의 이모저모와 갈등 국면이 많다. 또 자유롭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의도처럼 등장인물을 지배하거나 특정 결론을 유도하려는 움직임을 애써 피한다는 생각도 든다. 10편의 소설 중 ‘백자주병(白瓷酒甁)’은 1970년대 부산의 빈민가를 무대로 하고 있다. “동네 중심부에는 ‘기차표 신발’이라는 명칭의 신발공장이 중세 유럽의 성채처럼 동네를 내려다보며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기차표 신발공장’ 담 너머에는 오래된 판잣집과 일자..

감상글(책) 2022.08.16

<에세이> 아트로포스의 가위

정점식, 『아트로포스의 가위』, 흐름사, 1981. 정점식(1917-2009, 성주 출신) 화가는 김환기, 김병기, 유영국 등과 함께 한국 추상화의 1세대로 언급된다. 대구 계성학교, 계명대학교 등에서 근무하면서 그림 창작과 수업을 병행하며, 4권의 에세이까지 남겼다. 『아트로포스의 가위』란 제목은 화가가 봤던 ‘운명의 세 여신’이란 조각에서 빌려왔다. 파손된 형태 그대로에서 작가는 더 큰 감동을 받는다. 세 여신은 각각 클로토(인간 운명의 실을 잣는 여신), 라케시스(실을 감는 여신), 아트로포스(운명의 실타래를 자르는 여신)다. 아트로포스는 이승과 저승, 이쪽과 저쪽의 운명을 가차 없이 자르는 가위를 손에 지녔지만 잘려나간 조각상에선 찾아볼 수 없다. 없지만 이어보고, 그려보는 게 작가의 상상력이긴 ..

감상글(책) 2022.08.10

<에세이> 슬퍼할 자신이 생겼다

임창아, 『슬퍼할 자신이 생겼다』, 학이사, 2020. 이것을 견디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나를 의심했다 자주 불가능해서 슬퍼할 자신이 생겼다 위의 글은 최문자 시인의 시집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의 자서다. 생략과 역설의 묘미가 섞인 문장이라서 바로 와 닿지는 않지만 시집의 자서인 것을 감안하면, 자신의 시를 스스로 견디는 일이 어렵다는 말로 들린다. 더 절실하고 더 나은 어떤 경지에 미치지 못함을 인정하면서 그 한계를 슬퍼하는 진정성이 울림을 준다. 임창아 시인은 이 구절을 산문집 제목으로 차용했다. 견디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쏟아지는 기성품 같은 작품을 신뢰하지 못하는 시인의 인식이 엿보인다. 몸과 마음을 앓아가며 글을 쓰면서 이전에 없는, 있어도 구별되는 “새로운 의미..

감상글(책) 2022.07.21

<에세이>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

고향갑,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 파람북, 2022. - ‘한 글자’ 이야기를 시작해서 그때그때 매조지한 것이 예순아홉 번에 이르렀고, 이를 묶어 산문집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이 나왔다. 목차를 보니 둘, 옆, 곡으로 시작해서 쫌, 볕, 참(慘)으로 끝난다. 이 중에 을 보니, 작가가 감옥살이 경력이 있고 그 시절, 아내가 될 사람의 희생도 있었는 줄 알겠다. ‘옥’은 한자 모양새처럼 개 두 마리가 말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꼴이란다. 감옥이 아니더라도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말과 말이 서로 보듬지 않거나 통하지 못하면 그곳이 바로 감옥”이며, 우리 사회가 혹 그런 꼴을 하는 경우가 없는지 작가는 묻는다. 에선 갑질 중지와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관리자들의 태도와 막말을 비..

감상글(책) 2022.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