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550

<산문> 그 아침에 만난 책

이기철, 『그 아침에 만난 책』, 양산시민신문, 2022. - 책에 관한 책이다. 차례에 잡힌 책은 105편이지만 실제는 조금 더 된다. 몸이 아픈 중에도 부지런히 읽고 쓴 기록이다. 읽고 쓰는 일이 약이 되었는지 이기철 시인의 몸도 좋아졌다. 다른 묘약이나 처방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책 선택 기준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특정 경향을 띠지 않지만 시인의 가슴에 한 번씩 울림을 주었던 책이다. 시인의 페북엔 매일매일 전국의 책방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사냥해온 책 사진이 올라온다. 책은 쌓아두기만 해도 좋은 것이라고 하지만 시인은 수시로 허물고 새로 쌓는 신공을 지녔다. 책을 독파해낸 시간과 정성은 『그 아침에 만난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아직 쌓여 있거나 나날이 쌓일 책을 위해서 점심, 저녁, 오밤중에..

감상글(책) 2023.01.14

<그림 에세이>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황정수,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푸른역사, 2022, 감상 – 미술 관련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고 그림 감정에도 조예가 깊은 작가답게 근대 경성을 배경으로 활동했던 화가와 서화가(書畵家)들의 면모와 작품 양상을 종횡으로 자유로이 엮어서 출간한 책이다. 때로 주거지나 출신으로, 때로 인간관계로, 때로 영향을 주고받은 관계로, 무엇보다 작품 그 자체로 화가의 삶과 예술을 조망하고, 여기에 풍성한 에피소드까지 곁들여 놓았기에 책 읽기가 우선 즐겁다. 서촌과 북촌으로 나뉜 두 권의 책을 따라 읽으면, 화가들의 천국이란 유럽의 파리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물론, 천국은 예술가들이 득시글하다는 수사일 뿐 대개의 예술은 이런저런 부침과 좌절 속에 깊어지는 속성을 갖고 있다. 주제별로 나뉜 이야기 중에,..

감상글(책) 2023.01.09

<산문> 시는 늙지 않는다

신석초, 『시는 늙지 않는다』(신석초 문학전집2), 융성출판, 1885. 감상 – 신석초 시인(1909〜1975)은 1935년 정인보 선생 집에서 이육사 시인(1904〜1944)를 처음 만난 후 십 년 가까이 둘도 없는 막역지우로 지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궁금해서 찾아본 책이고 이육사에 대한 언급이 적지 않았지만 두 사람 관계는 시간을 두고 좀 더 공부해볼 필요를 느낀다, 두 사람이 같이 잘 아는 이병각(1910〜1941) 시인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수확이다. 이육사가 경기 말을 쓰려고 하는 편인 반면에 안동 지척이라고 할 수 있는 영양 출신 이병각 시인은 사투리를 대놓고 쓰면서도 전통이든 인습이든 간에 가문의식에 대한 저항이 컸다고 한다. “늬, 조상 뼈다귀 작작 팔아묵어라. 퇴계 뼈다귀가 앙상하겠구..

감상글(책) 2023.01.04

<산문> 그린 노마드

김인자, 『그린 노마드』, 학이사, 2022. 감상- 김인자 시인의 여행 산문이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쓰던 시인은 현재는 대관령 숲에 거주지를 두고 이곳에 머물 때가 더 많다. 그렇다고 시인의 여행이 끝난 것은 아니다. 해외로 다녔던 날의 기억을 불러오고, 국내 사찰을 찾아가 풍경소리를 듣고 오기도 한다. 전보다 활동 폭이 좁아졌을 순 있으나 여행의 밀도는 여전히 알뜰하고 내밀하다. 근래, 믹스커피 서른 개로 지하에서 221 시간을 견디며 삶의 불빛을 좇던 광부 소식을 들었기에 시인의 글 중에 커피와 차 이야기가 눈에 크게 띤다. 말라위 퉁가의 차밭에서 시인이 만난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 일하고 버스비를 아끼려 서너 시간 걸어서 귀가하면서도 오직 차만은 마음껏 마실 수 있다며 ..

감상글(책) 2023.01.01

<산문>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괴테(박영구 역),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푸른숲, 1998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들여놓고도 이탈리아 갈 일도 없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있어서인지 좀처럼 진도를 내지 못했다. 미적미적 나서도 결국 끝에 닿게 되는 건 괴테의 힘일 것이다. 괴테(1749-1832)는 1786년 9월부터 1년 9개월 간 이탈리아 여행에 나선다. 여행 중 1년 이상은 두 번에 걸쳐 로마에 체류한다. 괴테는 여행 전에 로마와 다른 도시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공부한 상태이고 여행 중에도 공부를 멈추지 않는다, 지역의 특징과 풍속, 자연과 식생, 건물과 유적지, 조각이나 그림, 만난 사람까지 세세하게 기록한다. 그런 중에 자기가 본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주변 화가에게 그림을 배우는 일도 멈추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여행과..

감상글(책) 2022.12.26

<산문>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이윤학,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간드레, 2022. - “내 조그만 공간 속에 추억만 쌓이고 / 까닭 모를 눈물만이 아른거리네./ 작은 가슴 모두 모두어 /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김광석의 노래로 알려진 의 일부다. 얼핏 류근 시인의 시를 김광석이 노래로 불렀던 처럼 도 이윤학 시인의 시인가 싶었는데 아니다. 여러 가수에게 리메이크 된 는 1976년 송문상이 작사해서 이미키 가수에게 준 노래다. 이후 이미키는 송문상의 아내가 된다. 송문상은 이 노래에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실려 있다고도 했다. 그럼, 이윤학 시인은 의 가사를 자신의 산문 제목으로 왜 가져왔을까. 1993년 가을, 라디오 방송에서 김광석 가수가 이윤학의 첫 ..

감상글(책) 2022.11.18

<산문> 나는 태양 때문에 그를 죽였다

채형복, 『나는 태양 때문에 그를 죽였다』, 학이사, 2022. ㅡ법학자이면서 문학도이고 시인이기도 한 저자는 법과 문학을 넘나드는 글쓰기 끝에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법정에 선 문학』을 통해 필화 사건을 겪은 한국 문학을 다루었고, 이번 『법으로 읽는 고전문학 : 나는 태양 때문에 그를 죽였다』에선 유럽의 고전 작품을 법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기를 꾀하고 있다. 여덟 편의 고전 중에 존 밀턴의 『실낙원』을 보자면, 법의 적용을 고민하기보다는 풍성한 문학 이야기의 꽃을 피워 놓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먼저 눈에 띄는 건 메리 셸리가 쓴 『프랑켄슈타인』과의 관계다.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괴물이 『실낙원』을 읽고 아담과 사탄의 감정에 이입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했다. 궁금증이 생겨 『프랑켄슈타인』에서 관..

감상글(책) 2022.11.10

<동화> 아이 돌보는 고양이 고마워

박채현 글 이은주 그림, 『아이 돌보는 고양이 고마워』, 봄마중, 2022. - 『아이 돌보는 고양이 고마워』 표지 그림을 보면 고양이가 새끼를 돌보는 게 아니고 사람 아이를 돌보는 가사 도우미로 등장한다. 동물과 얘기하는 동화는 이미 판타지다. 고양이의 말과 행동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친밀감을 느낀다면 고양이가 아이를 돌보고 어른을 설레게 하는 스토리는 판타지가 아니고 현실이기도 하다. 실제로 주변에 동물을 가까이하면서 대화를 곧잘 하는 사람이 드문 건 아니다. 쌍방향 대화인지 의문은 있지만 고양이와 개는 반려동물로 다른 가축과 구별되는 지위를 얻고 있다. 고양이나 개가 그런 지위를 갖기 위해서 애를 쓴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선택이 그리되었을 것이다. 이 또한 편견일 가능성은 열어 두자. 고양이 속을 누..

감상글(책) 2022.11.03

<소설> 남중

하응백, 『남중』, Human & Books, 2019. - “작가 자신을 일인칭 주인공으로 하여 자신의 체험이나 심경을 고백하는 형태로 표현하는 소설”을 사소설(私小說)이라 한다. 하응백 작가의 연작소설 『남중(南中)』도 일인칭 화자에 의해 글이 서술되고 서술자의 경험과 진술에 거짓의 느낌이 없기에 사소설에 가깝다. 또한 「김벽선 여사의 한평생」과 그 짝이 되는 「하 영감의 신나는 한평생」은 전(傳)의 형식을 빌린 소설이라고 해도 되겠다. 전(傳)은 인물의 특기할 만한 행적을 바탕으로 인물의 출생과 성장 배경, 인물에 대한 비평이나 상찬을 곁들인 것으로 여기에 그럴듯한 서사까지 더하면 한 편의 소설이 된다. 사소설 혹은 전기소설은 실제 있었던 일을 재구성하는 방법을 따르다 보니 소설은 기본적으로 거짓말..

감상글(책) 2022.10.30

<산문> 약산 진달래는 우련 붉어라

계희영, 『약산 진달래는 우련 붉어라 : 김소월의 생애』, 문학세계사, 1982. - 『약산 진달래는 우련 붉어라 : 김소월의 생애』는 『내가 기른 소월』(장문각, 1969)을 재출간한 책이다. 계희영은 소월의 숙모다. 소월의 큰숙부에게 시집온 것은 소월이 4살 때인 1905년 가을이었고, 소월이 잠깐의 서울 생활과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서 처가인 구성군으로 살림을 나간 것은 1926년의 일이었다. 그 기간에 계희영은 누구보다도 소월을 가까이 지켜본 인물이니 이 책은 소월의 개인사에 대해 가장 신뢰할 만한 기록인 셈이다. 소월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남산리다. “말 마소 내 집도 / 정주 곽산 / 차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고향」)라고 노래한 바 있다. 실제 태어나기는 1902년, 외가인 구성..

감상글(책) 2022.10.19